서울의 고궁 기록보존실에서 일하는 기록연구원 서윤은 어느 겨울밤, 도면에도 존재하지 않는 봉인된 서고에서 이름 없는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누렇게 바랜 한지 위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오늘 밤 자시가 되거든, 부디 답을 주시오.”
처음에는 오래된 기록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이 되자 편지의 문장이 저절로 바뀐다. 그리고 서윤이 답장을 쓰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다시 먹으로 답을 보내오기 시작한다.
편지를 보낸 이는 조선의 왕세자 이현.
기록에는 스물세 살에 요절했다고만 남아 있고, 그의 죽음과 관련된 왕실 일지는 이상하리만큼 많은 부분이 지워져 있다.
과거의 동궁에서 살아가는 이현 역시 어느 날 빈 종이에 나타난 낯선 여인의 글씨를 발견한다. 자신보다 수백 년 뒤의 시대에 산다는 서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 채 하루에 한 장씩 편지를 주고받는다.
서윤은 그가 좋아하는 계절을 묻고, 이현은 미래에도 달빛이 같은지 묻는다.
왕세자라는 이름 뒤에 감정을 숨겨야 했던 이현은 서윤의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평범한 스물세 살 청년이 된다. 사랑을 믿지 않던 서윤 역시 매일 밤 자신을 기다리는 한 사람 때문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서윤은 이미 알고 있다.
역사가 기록한 이현의 죽음까지 남은 시간은 단 열두 날.
더구나 삭제된 기록을 복원하던 중, 서윤은 이해할 수 없는 한 문장을 발견한다.
“왕세자가 죽던 밤, 궁에 존재하지 않는 여인이 목격되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단순히 시간을 넘어선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오래전부터 그들이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가 도착하는 순간, 서윤은 선택해야 한다.
역사에 기록된 그의 죽음을 그대로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건너 그에게 가서, 이미 끝난 역사를 바꿀 것인지.
열두 날 동안 이어지는 편지와 하나씩 되살아나는 궁궐의 비밀.
죽음이 예정된 왕세자와 미래에서 그를 사랑하게 된 여인의 이야기가 두 시대를 가로질러 시작된다.
사랑하는 서윤에게.
그 문장이 왕세자의 마지막 편지가 될지, 새로운 역사의 첫 문장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