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리스트
  • 구매
안나스 상회
글쓴이
임석인 저
출판사
BOOKK(부크크)
출판일
2026년 10월 27일
  • 읽고있어요

  • 다 읽었어요

  • 읽고싶어요



책 소개

분야종교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오래된 문장은 단순히 과거의 한 시점을 기록한 역사적 진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여 인간의 영적 본성을 꿰뚫어 보는, 한없이 차갑고도 명징한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둠을 빛이 결여된 상태, 혹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무지의 공간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깊은 어둠 속에 머물러 본 사람이라면 알게 됩니다. 어둠은 그 자체로 나름의 질서를 확립하며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구축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인간의 눈은 서서히 그 적막하고 차분한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동공은 미약한 흔적이라도 찾아내려 한껏 확장되고, 이윽고 짙은 그늘 속에서도 사물의 희미한 윤곽을 구별해 내는 법을 터득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속한 그 어두운 세계가 유일하고도 온전한 현실이라고 굳게 믿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예고 없이 강렬한 정오의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오랫동안 어둠의 질서에 길들여진 눈은 진리의 빛을 반갑게 맞이하기보다는, 망막을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에 본능적으로 두 눈을 강하게 감아버릴 것입니다. 눈부심을 견디지 못한 자들은 참된 빛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평온했던 어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빛의 근원을 가리려 듭니다. 이천 년 전 예루살렘,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의 뜰에서 벌어졌던 그 비극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비루한 방어 기제와 이기심에서 잉태되었습니다.

선지자 말라기의 애끓는 마지막 경고가 유대의 메마른 광야에 울려 퍼진 이후, 하늘은 무려 사백 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 동안 깊은 침묵에 잠겼습니다. 하나님의 뚜렷한 음성이 들리지 않는 그 아득한 공백기 동안,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재를 무릅쓰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며 엎드리기보다는, 자신들만의 견고한 세상적 체제를 구축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선지자들의 빈자리를 두려워하며 하늘을 우러러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침묵의 시간이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끊임없이 이어지자, 성전의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의 마음속에서 절대자를 향한 본질적인 경외심은 돌처럼 서서히 굳어져 갔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광을 갈망하는 대신, 당장 눈앞에 밀려드는 헬라의 화려한 철학과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타협은 어느새 권력을 향한 맹렬한 탐욕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성소의 등잔불을 밝히고 향단을 정결하게 관리하는 거룩한 행위는 점차 영혼이 빠져나간 기계적인 의식으로 굳어졌습니다. 그 빈자리는 치밀하게 계산된 이익과 세속적인 거래들이 촘촘하게 채워나갔습니다. 성전은 더 이상 통회하는 자들의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제단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그 타락의 중심에는 세속의 권력과 은밀히 야합하여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문의 소유물처럼 독점했던 안나스 일가가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뜰을 장악하고 그곳에 거대한 환전소와 제물 판매소를 세웠습니다. 표면적인 명분은 하나님께 흠 없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율법의 엄격한 준수였으나, 그 이면의 실상은 먼 길을 달려온 순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들의 금고를 빈틈없이 채우는 교묘한 수탈 장치였습니다. 순례자들의 절박하고 순수한 신앙심은 그들의 탐욕스러운 배를 불리는 가장 훌륭한 화폐가 되었고, 모세를 통해 주어졌던 생명의 율법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고 약자들을 옭아매는 서늘한 통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죄 없는 짐승들의 불안한 울음소리와, 환전상의 목재 테이블 위로 동전이 쏟아지며 부딪히는 차가운 금속성 마찰음이 성전의 뜰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그 탐욕의 소음을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포장했습니다. 어둠에 철저히 동화된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세운 이 거대한 '안나스 상회'의 끝없는 번영이 곧 하늘이 내린 은혜이자 흔들리지 않는 진리 그 자체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횃불 아래서 흠씬 취해 있었고, 그 거짓된 평화와 풍요가 대대로 영원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방식으로 참된 빛이 예루살렘 성전에 당도했습니다. 화려하게 수놓은 제사장의 에봇을 입지도 않았고,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자의 번뜩이는 검도 지니지 않은, 갈릴리 출신의 초라한 청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이 품고 있는 진리의 빛은 너무나 맹렬하고 순전하여, 안나스 가문이 오랜 세월 공들여 쌓아 올린 위선과 기만의 그늘을 단숨에 걷어내 버렸습니다. 청년이 성전 뜰에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고 환전상들의 상을 엎어버렸을 때,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견고한 세계를 지탱하던 거대한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의 막대한 부와 흔들림 없는 권위를 위협하는 위험한 파괴자일 뿐이었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서늘한 이기심과 비극적인 모순에 관한 묵묵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온몸으로 수호한다는 거창한 명분 뒤에 숨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세속적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민낯을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방의 권력인 로마와 손을 잡고, 어떻게 사탄의 은밀한 유혹에 동조하여 마침내 생명의 주관자를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게 되었는지, 그 치밀하고도 비정한 타락의 궤적을 쫓아갈 것입니다.

과장된 언어나 극단적인 감정의 표출은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저 긴 역사의 켜켜이 쌓인 먼지를 묵묵히 털어내듯, 당시의 풍경과 인물들의 깊은 내면을 한 걸음 물러선 관찰자의 시선으로 더듬어 보겠습니다. 이천 년 전 예루살렘의 이야기가 단지 낡은 과거의 화석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더욱 거대해진 외형 속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의 수많은 제단들을 비추는

전체 리뷰 (0)
최근 작성 순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