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주로 강원도의 산과 바다를 누비며 써 내려간 길 위의 기록들을 엮은 것이다.
길을 나서는 것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을 설레게 한다.
그 길 끝이 수평선 너머 아득히 이어지는 바닷길이든, 겹겹이 둘러싸인 백두대간의 깊은 산길이든 상관없다. 발길 닿는 곳마다 자연은 제각기 다른 얼굴로 찾아와 저마다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이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7번 국도에서 시작된다.
부산을 떠나 울진의 바닷길을 따라 북상하는 여정은 그야말로 절경 중의 절경으로,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었다.
울진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에 속해 있어 《강원 편》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7번 국도를 따라 오르는 여정의 들머리이기에 한데 묶었으니 너른 양해를 구한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바라본 자그마한 돌섬과 그 위에 의연히 선 소나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솔숲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수채화다.
이뿐만 아니라 널리 알려진 촛대바위를 지나 삼척의 소박한 갯마을 앞에 자리한 아담한 섬, 그리고 그 섬이 품고 있는 옛이야기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7번 국도의 선물이다.
동해시에 들어서 만난 무릉계곡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넓디넓은 무릉반석과 계곡에 얹힌 거대한 바위들, 그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굽이, 그리고 암벽 사이로 시원스레 떨어져 내리는 쌍폭포와 용추폭포는 자연이 빚어낸 으뜸의 예술품이다.
무릉계곡에 자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년고찰 삼화사를 거닐다 보면, 절 뒤로 우뚝 솟은 절벽과 고즈넉한 절집 풍경이 어우러져 남다른 울림을 준다.
이곳에선 그저 자연과 인간이 이뤄낸 조화로운 풍경에 가만히 마음을 맡기게 된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삼척 바다의 오밀조밀한 바위들과 그 위를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 그리고 갈남마을의 그윽한 야경 또한 잊히지 않는다. 바위는 바위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제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모습에서 문득 삶의 깊은 이치를 가슴에 담으며 돌아왔다.
2부는 태백산 겨울 풍경에 관한 글이다.
2015년 겨울의 태백산은 그야말로 순백의 세상이었다.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화사하게 피어난 눈꽃과 이글루 전시관의 얼음 속에 갇힌 해바라기, 이어 방문한 단군성전과 호젓한 눈길까지.
그 미끄러운 길 위에서 서로 나누었던 작고 따스한 온기는 가슴속에 진한 시심(詩心)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3부는 2021년 늦여름, 원주, 오대산, 영월, 정선, 태백, 삼척, 울진 등지를 누빈 기록이다.
원주 《뮤지엄 산》에서 만난 조각과 미술 작품들, 소금산 출렁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까마득한 풍경, 그리고 오대산 월정사와 숲길을 거닐며 스쳤던 생각들을 정성껏 기록했다.
또한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 《삼탄아트마인》을 둘러보고, 정선 만항재에서 야생화를 익히며, 태백을 거쳐 삼척 환선굴의 신비로움을 접했던 여정을 다루었다.
영월의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서는 자연이 오묘하게 빚어낸 산천의 오롯한 자태에 탄복하였고, 폐광의 아픈 역사를 문화 예술 공간으로 승화시킨 《삼탄아트마인》에서는 지나간 시간과 산업의 흔적을 깊이 되새겨 보았다.
이어 하늘 아래 첫 고개라 불리는 정선 만항재의 드넓은 야생화 화원에서는 어여쁜 들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정작 자연을 자연답게 배우지 못한 잘못된 우리 교육의 아쉬운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누르지 못하기도 했다.
한편 삼척 환선굴에서는 수억 년 세월이 머물러 만든 오색빛 석회동굴의 신비로움과 대자연의 웅장함을 온몸으로 접했던 여정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4부는 2024년 봄, 부산에서 출발하여 안동호와 발왕산, 강릉 안목해변을 거쳐 다시 부산으로 내려온 여정이다.
이 책이 《강원 편》으로 묶여 있지만, 부산에서 출발해 강원도를 다니다 보니 길목에 위치한 다른 지역들을 거쳐 가곤 했다. 따라서 4부의 시작인 안동호 월영교, 농암종택, 안동호반 자연휴양림, 하회마을에 관한 글은, 앞서 언급한 7번 국도의 울진과 마찬가지로 《영남 편》에서 다루어야 마땅하나, 여정의 흐름상 이곳에 담게 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 여행기 5: 영남 편 - 인연이 다하면 새로운 인연이》에도 안동, 청송, 울진을 여행한 기록이 있으나, 이는 2016년의 여정이므로 이 책에 담긴 글과는 내용이 다르다. 만약 안동의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유교문화박물관 등을 찾으실 계획이라면 그 책 또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월영교 다리를 건너며 회상한 ‘원이 엄마의 사랑 이야기’는 부부간의 애틋한 정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어 방문한 농암종택은 농암 이현보 선생의 가사문학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수려한 산수 풍경을 품고 있었다. 종택을 둘러싼 병풍 같은 절벽과 굽이치는 낙동강 지류 분강의 풍광이 어찌나 수려한지, 이런 곳에 머물면 누구라도 절로 글귀를 짓는 대문호가 될 듯했다.
문명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에 들어 자신을 마주하던 시간, 애일당과 강각에 서서 옛 선현들의 효심과 풍류를 반추하던 순간들은 우리 삶의 결을 한층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울러 안동호반 자연휴양림의 그윽한 경치 또한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제 안동을 뒤로하고 발왕산의 왕주목을 보러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기이하고 당당한 주목들을 따라 걷는 길은, 삶과 죽음의 오묘한 조화를 고요히 생각하게 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처럼, 생명이 있는 주목이나 생을 다한 주목이나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의 죽음 또한 저처럼 아름다워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살아생전 이 삶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면, 훗날 찾아올 마지막 순간 역시 한층 아름답지 않겠는가.
길 위에서 써 내려간 이 작은 기록들이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탁 트인 자연을 품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길 끝에서 참된 자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와 여운으로 다가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