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가면서 그 타인에게 상처받는다. 자신을 지탱해 주던 관계가 위협으로 바뀔 때, 불안은 마음뿐 아니라 몸의 감각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흔든다. 아은 시인의 시집 『나나를 접는 방법』은 이러한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존재의 움직임을 그려낸다. 몸이 접히고 사물이 살아 움직이며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변하는 풍경에는 관계의 폭력이 남긴 상처와 그 상처를 견디려는 힘이 함께 들어 있다.
이 시집에서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몸에 남아 현재의 삶을 바꾼다. 예컨대 「이팝나무 아리아」에서는 어머니의 고통이 아이를 향한 비난으로 옮겨간다. 태어나기 전부터 타인의 불행을 떠맡은 존재는 자신이 정말 ‘못된’ 사람인지 되묻는다. 마침내 “못, 된, 년”으로 끊어진 말에서 날카로운 ‘못’이 쏟아진다. 사람을 평가하던 말이 몸을 찌르는 사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아은 시인은 말의 소리와 형태를 갈라 그 안에 숨어 있던 폭력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시집의 중심에는 ‘나나’라는 또 하나의 자아가 있다. ‘나’가 거듭되는 이름에는 자신을 밖에 세워놓고 바라보려는 시선이 깃든다. 시집 속 화자는 나나의 몸에 고통을 옮겨놓음으로써 자신이 겪는 일을 살피고 대응할 거리를 얻는다. 표제작의 “나나는 자신을 반으로 접었다/볼과 허리와 발목에 꽂히려는 화살을 피해”라는 구절은 그러한 자기방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접힌 몸 안에는 맞서는 힘도 남아 있다. 작품의 끝에서 나나는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에게 활을 겨눈다. 숨으려는 몸과 저항하려는 몸이 한 존재 안에서 만난다. 의자를 쌓아 작은 왕국을 만드는 「원룸」에서도 이러한 힘은 위태롭게 지속된다.
자기를 보존하려는 힘은 초록과 상승의 이미지에서도 나타난다. 아은 시의 초록에는 생명의 무성함과 몸을 휘감는 위협이 공존한다. 넝쿨은 자라면서 다른 존재를 붙들고, 숲은 매혹과 두려움을 함께 불러낸다. 「뱀이 수직으로 올라간다」에서 화자가 “중력을 거스르는 지독한 척추”에 매혹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움직임은 다른 사람에게 닿으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경계를 짜는 시간」에서 아픈 이의 소식을 들은 화자는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실 사다리를 만든다. 사람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사다리에도 상대에게 가고 싶은 마음은 담길 수 있다. 꽃과 꽃 사이를 잇는 사다리의 이미지에는 상처받은 관계를 다시 열어보려는 기다림이 깃든다. 타인을 밀어내면서도 누군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을 숨기면서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이 시집의 변신을 복잡하고 절실하게 만든다.
이 절실함은 마지막 작품 「스카비오사」에서 새로운 방향을 얻는다. 화자는 “그래 아무도 내리치지 않고 딱 한 번 주문을 걸어 볼게”라고 말하며 비가 되는 변신을 상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도 내리치지 않고’라는 다짐이다.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다른 존재에게 돌려주지 않으려는 의지가 변신의 상상력에 더해진다. 가슴에 박히는 빗줄기의 감각에는 여전히 고통이 남아 있다. 그 고통을 품은 채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는 존재 방식을 찾으려는 마음이 시집의 끝을 연다.
『나나를 접는 방법』의 시적 성취는 관계의 상처를 몸과 사물, 색채와 공간의 변화로 구체화하고, 그 변화 속에 삶을 지속하려는 힘을 새겨 넣는 데 있다. 돌연한 이미지의 전환과 감각의 교차, 끊기거나 끝맺지 못한 문장들은 불안정한 자아의 경험을 언어의 형식으로 구현한다. 독자는 그 낯선 풍경을 지나며 자신의 삶에도 남아 있는 두려움과 갈망을 만난다. 접힌 몸이 끝내 지키려 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갈 자리이며, 그 자리에서 다시 타인과 관계 맺을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