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언론인이자 두 아들의 엄마 유정임이 이미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의 어떤 말이 너를 키웠니?”
엄마 노릇을 하다 보면 비슷한 장면이 자꾸 되풀이된다. 성적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가 입을 닫고, 안 된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하루 종일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이 들고, 다른 집 아이와 비교는 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해 놓고도 옆집 엄마의 말 한마디에 또 흔들린다. 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적어도 그렇게 믿고 하는 말인데) 돌아오는 것은 침묵 아니면 짜증이다. 그런 밤이면 책장의 육아서를 한 번 더 꺼내 보게 되지만, 거기 적힌 대로 말해 봐도 며칠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시, 엄마를 배우다』는 이 물음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던져 보는 책이다. 지금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를 묻는 대신, 이미 자라서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묻는다. 엄마의 말이 당신 안에 어떻게 남아 있느냐고. 저자 유정임은 30년 넘게 방송과 언론에서 일한 PD이고, 두 아들을 키웠다. 아이들이 다 자라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고 저자는 적는다. 너희들은 괜찮았니, 힘들었던 건 아니야, 말을 못 한 건 아니지. 그 질문을 들고 저자는 이미 어른이 된 청년 열두 명을 찾아갔다. 수능 만점자가 있고, 독일로 떠난 승마선수가 있고, 영화를 만드는 PD, 인기 크리에이터, 의사과학자, 뉴욕에서 일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자란 집도 다르고 지금 서 있는 자리도 다른데, 저자가 물은 것은 한 가지였다. 엄마가 했던 말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게 무엇인지.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잘했다. 그만하면 됐다.” “싫으면 안 해도 돼. 정하는 건 너야.” “세상이 너 같은 아이를 알아볼 준비가 안 된 거야.” 어떤 아이에게는 한참 뒤에야 건네진 “미안하다…” 한마디가 남아 있었다. 열두 편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끝에 가서 아이들이 꺼내 놓는 엄마의 말은 신기할 만큼 서로 닮았다. 다그친 말보다 기다려 준 말이, 가르친 말보다 믿어 준 말이 남아 있었다. 책은 각 인터뷰 끝에 그 한마디를 적어 두고, 그 옆에 아이가 엄마에게 받은 것을 ‘선택의 자유’, ‘조건 없는 인정’, ‘다름의 지지’ 같은 짧은 말로 붙여 두었다.
그렇다고 잘 키운 엄마들의 성공담만 모아 놓은 책은 아니다.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에는 저자가 두 아들을 키우며 배운 지혜를 담은 글이 놓여 있다. 엄마에게는 정답이었던 말이 아이에게 가서는 오답이 되던 날, 엄마의 말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말이 사라지던 순간을 돌아보는 글이다. 이 글들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알려 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한다. 열두 편 가운데 한 편은 엄마의 말이 아닌 아빠의 말을 기억하는 딸의 이야기인데, 그 편을 읽고 나면 이 책의 질문은 엄마라는 이름을 넘어, 한 사람을 키우는 말이란 무엇인가 하는 데까지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