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가 끝까지 보지 못한 마음이 하나 있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다.”
894년, 명주로 들어간 궁예의 무리는 600여 명에서 3,50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그는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고 상과 벌을 공평하게 나누던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무 해쯤 지난 914년 무렵, 같은 사람이 관심법으로 마음을 본다며 왕건에게서 모의한 적 없는 반역의 자백을 받아 냈습니다. 사람을 얻던 장군과 사람을 잃던 왕은 어떻게 같은 사람일 수 있었을까요.
『세상의 모든 답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숨어 있다』는 한국철학전집의 다섯 번째 권으로, 마진과 태봉을 세운 궁예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보는 인문서입니다. 책은 드라마 속 외눈의 폭군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걷어 냅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누구에게서도 자리를 물려받지 않고 일어나 나라 이름과 연호와 관제를 제 손으로 지은 창업자의 28년입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그만한 사람이 왜 자신이 세운 나라에서 쫓겨났는가. 답은 능력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에 있습니다. 신라를 멸도라 부르며 놓지 못한 집착, 거짓 자백에 정직이라는 이름을 붙인 조정, 간언한 아내와 두 아들을 향한 의심, 그리고 918년 여름밤 왕건의 문을 두드린 네 장수까지, 책은 사서의 장면을 하나씩 짚으며 한 사람의 눈이 바깥으로만 열려 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장면마다 오늘의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잠들기 전 남의 화면을 넘기며 속마음을 짐작하고, 확인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리는 일은 규모만 작을 뿐 관심법과 닮아 있습니다. 책은 비교와 넘겨짚기에 지친 독자에게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질문으로 짚어 줍니다.
궁예는 평생 남의 속을 들여다보겠다고 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자리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당신은 누구의 속을 캐고 있었는지, 그리고 당신 안의 무엇을 외면하고 있었는지,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