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고통에 가두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기억뿐이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지울 수 없는 기억이라면 다시 묻어야 했다. 이번에는 더 크고 더 이기적인 망각으로 그 사람의 살 조각조차 다 소화해야만 했다.”
늪과 안개의 속성처럼,
헤맬수록 먹먹해지는 인간의 내피를 더듬는다
2025년 무영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 오른 최탁 소설가가 첫 소설집을 걷는사람 소설 26번으로 출간했다.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각종 문학제를 휩쓸어 등단 직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작가의 역작 일곱 편을 실은 이 책은 기업 스릴러부터 SF, 역사, 로맨스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심층을 작가 특유의 필치로 예리하게 보여 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상실의 감각을 겪는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이는 현대 사회 개체 누구나 겪을 만한 사건들이므로 독자에게 감응을 준다. 작중 인물 혹은 우리는 놓쳐 버린 환영을 마주하고 그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빠져나오지 않기를 선택한다.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이루어진 아늑한 고립은 평온을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표제작 「오를수록 짙어지는」에서 ‘윤인구’는 자신이 가족과 직장을 잃은 세계 속으로 ‘변두헌’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최탁이 구사하는 글의 또 다른 특징을 드러낸다. 상실감을 처리하는 일에 둘 이상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내가 없는 곳의 우리」에서 ‘여자’는 가상 공간 속의 화자를 이용하고, 「런다운」에서 ‘오석’은 죽은 아내를 살려 결혼반지 속에 가두며, 「나비와 불로초」에서 ‘불멸의 존재’는 실험자들과 형사의 몸을 뺏는다. 최탁은 표면적으로는 ‘꿈’의 속성으로 나타나는 공간 속에서 인물들과 독자들이 안개처럼 눅눅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인물들은 꿈 같은 공간에 고립당한 듯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은 개인의 치부나 밑바닥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택한 둘 이상의 동행은 인간의 불완전한 속성 자체를 투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오를수록 짙어지는』은 손쓰기 힘든 불행과 감정의 늪 앞에서 각각의 주체자가 누군가와 어떤 시간을 통과하는지 보여 준다. 첫 책을 펴내는 소설가가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첨예하게 더듬으며 발음한 목소리들이 소설집에 고스란히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