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는 일은 다음에 무엇을 지을지 묻는 일과 함께 갈 때만 뜻을 얻습니다.
1842년, 스물여덟 살의 러시아 귀족이 독일의 한 잡지에 가명으로 글을 실었습니다. 그 글의 마지막 줄 ‘파괴의 열정은 동시에 창조의 열정이다’는 백팔십 년 넘게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이 한 줄만 떼어 놓으면 부수는 일을 즐기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문장이 놓인 자리로 돌아가 보면 무게중심은 부수는 쪽보다 짓는 쪽에 있습니다.
미하일 바쿠닌은 흔히 폭탄과 함께 기억됩니다. 하지만 그가 허물려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 위에 사람을 앉히는 장치들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와 교회와 고정된 권위를 허문 자리에 사람들이 아래에서부터 스스로 엮어 올리는 공동체를 세우려 했습니다. 그 꿈을 좇는 길은 험했습니다. 그는 바리케이드에 섰고, 두 번 사형 선고를 받았고, 세 나라의 감옥을 거쳤으며, 시베리아에서 탈출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런던에 닿았습니다.
『부수려는 열정은 곧 지으려는 열정이다』는 시대철학 시리즈의 열 번째 권으로, 부수는 열정, 사슬의 시간, 권위의 자리, 아래에서 위로, 짓는 열정의 다섯 장으로 바쿠닌의 삶을 따라갑니다. 미지근한 타협은 왜 위험한지, 구두장이의 권위는 받아들이면서 왕의 권위는 왜 거부했는지, 마르크스와는 어디서 갈라섰는지를 장면으로 살핍니다. 책은 그를 영웅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네차예프에게 속은 일, 바로나타 저택의 파산, 펜 끝에 남은 민족 편견까지 그림자도 함께 적습니다.
장마다 그의 일화는 오늘의 회의실, 가게, 노동조합, 가정으로 옮겨 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 때, 오래된 가게를 접지 못할 때, 내 자리가 나를 바꾸고 있을 때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가 실제로 부순 것은 거의 없었고 지은 것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부수는 일과 짓는 일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묻습니다. 부서진 자리 앞에서 당신은 잔해 위에 앉아 있는지, 새 터를 고르고 있는지. 무언가를 허물 때마다 그 옆에 지을 것의 첫 줄을 적어 두라는 것, 이 책이 건네는 설계도는 그렇게 작지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