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의 성명과 현장의 변화 사이에는 회원국과 예산의 벽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 감염병이 번졌다는 보도가 나오면 세계보건기구의 이름이 따라온다. 난민이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는 소식에는 유엔난민기구가 등장한다. 전쟁이 시작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회의를 열고, 외환위기를 겪는 나라는 국제통화기금과 협상한다. 독자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떠올린다. 국제기구가 있으면서 왜 위기를 막지 못할까. 어떤 때는 눈에 보이는 도움을 주면서 어떤 때는 성명 하나 내는 데 그칠까.
국제기구를 읽기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유엔과 유엔 체제의 전문기구는 하나의 조직도에 들어가지만 모든 예산과 지휘 체계를 공유하지 않는다. 유엔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는 모두 유엔의 기관이지만 표결 방식과 의사결정의 효력이 다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사이의 법적 분쟁을 다루고, 세계무역기구의 분쟁절차는 무역협정에 관한 다툼을 다룬다. 같은 국제적 분쟁이라도 어느 기구가 맡았는지를 모르면 판결의 대상, 집행 방식, 불복 절차를 혼동하기 쉽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국제기구가 강한가 약한가라는 한 줄의 평가가 아니다. 무엇을 하도록 만들어졌는지, 누가 동의해야 움직이는지, 어느 돈을 쓸 수 있는지, 실제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지, 잘못했을 때 누가 책임을 묻는지를 따져야 한다. 다섯 가지를 분리하면 성명과 결의, 예산 승인과 현금 확보, 협약 채택과 발효, 지원 약속과 실제 전달이 서로 다른 사건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뉴스의 제목에서는 비슷해 보여도 공개 문서에는 그 차이가 기록되어 있다.
세계의 뉴스를 읽을 때 권한과 책임의 범위를 함께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