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돌봄을 오래 이어 가려면 가족 사이에도 분명한 약속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한 가족의 시간표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잠든 뒤에야 저녁을 먹는 부모의 시간, 병원 예약과 모임을 정해 두었던 조부모의 시간, 어린이집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 출근길 도로가 막히는 시간까지 서로 맞물린다. 한쪽의 일정이 조금 흔들리면 다른 쪽의 오후가 통째로 바뀔 수 있다. 그 빈자리를 가족이 메워 주는 일은 고맙고 든든하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빈자리를 언제까지,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메울 수 있는지 저절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누가 더 희생해야 하는지를 정하지 않는다. 조부모의 사랑을 무한한 노동력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부모 세대가 느끼는 돌봄 불안을 유난이나 이기심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부모가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고 싶어 하는 마음과 조부모가 자기 생활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서로 적대적인 목표가 아니다. 다만 두 마음이 같은 하루에 놓일 때 조정할 일이 생긴다. 그 조정을 사랑의 크기나 효심의 증명으로 바꾸지 않는 것이 출발점이다.
부모 쪽에도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다. 아이를 맡기는 순간 죄책감이 들고, 부모의 방식을 설명할수록 잔소리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불안하다. 안전에 관한 새로운 권고를 전하려다가 “너희는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키우니?”라는 반응을 들을지도 모른다. 부탁을 거절당하면 출근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질문을 뒤로 미루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 역시 명확한 약속의 도움을 받는다. 요구를 숨기지 않아도 되고, 감사 때문에 필요한 설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양육 기준·비용·휴식·경계를 함께 정하는 세대 간 대화. 이 책과 함께 주제를 이해하는 기준을 차근차근 세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