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는 듯한 식물도 씨앗에서 꽃까지 생존의 선택을 이어 갑니다. 비가 내린 다음 날, 길가의 흙에서 작은 싹이 올라온다. 사람은 대개 그날을 식물이 태어난 날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싹을 만든 사건은 비가 오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씨앗이 만들어질 때 배아의 기본 구조가 마련되었고, 모체에서 받은 물질이 쌓였으며, 떨어진 뒤에는 습도와 온도와 빛이 변하는 시간을 통과했다. 첫 잎이 보이는 순간은 긴 과정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이미 진행된 과정의 결과이다. 씨앗을 며칠 동안 들여다보아도 움직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도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경계이다. 고사리류와 이끼류에는 포자를 중심으로 설명해야 하는 생활사가 있고, 소나무 같은 겉씨식물은 속씨식물의 꽃과 열매에 맞춰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은 씨앗·꽃·열매의 연속성이 뚜렷한 속씨식물을 중심에 놓되, 다른 식물 계통의 예외를 필요한 곳에서 밝힌다. 설명의 중심을 잡기 위한 선택이지, 식물의 세계가 한 가지 설계로 이루어졌다는 선언은 아니다.
식물학 연구는 특정 식물을 자세히 살펴 원리를 밝히는 일에서 크게 전진했다. 애기장대의 작은 꽃은 꽃 기관이 만들어지는 유전자 조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벼는 낮 길이에 대한 반응이 같은 공식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배추과의 자가불화합성 연구는 꽃가루가 도착한 뒤에도 수정까지 가지 못하는 경로를 드러냈다. 난초 씨앗의 극단적인 작음은 씨앗이 반드시 충분한 저장 양분을 품고 출발해야 한다는 통념을 흔든다.
발아·성장·개화·수분·번식으로 읽는 식물의 생활사. 이 책과 함께 주제를 이해하는 기준을 차근차근 세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