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계약에 남은 문서와 증인은 사람들의 약속을 어떻게 지켰을까요? 오래된 종이 한 장은 의외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넘겼는가. 왜 그 일을 하기로 했는가. 훗날 다른 사람이 다투면 무엇을 보여 주려 했는가. 기록의 주인공이 왕이나 이름난 학자가 아니어도 사정은 같다. 논밭을 사고팔거나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는 거래를 끝내는 일만큼 그 거래를 나중에 증명하는 일이 중요했다. 남아 있는 고문서는 그 필요를 글자로 붙잡은 흔적이다.
이 책은 그런 구분을 지키며 생활사를 읽으려 한다. 앞부분에서는 토지, 대여, 노동, 혼인을 따로 살피고 다시 연결한다. 땅을 넘기는 기록과 돈을 빌리는 기록은 모두 재산의 이동에 관계하지만 물건의 귀속과 반환 의무라는 서로 다른 질문을 남긴다. 일한 대가를 받는 일은 돈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신분과 자유의 문제였다. 혼인과 상속에 관한 글은 가정의 결합과 재산의 분배를 보여 주지만 혼인 당사자의 생각을 전부 대신하지 못한다.
뒷부분에서는 종이의 형식 자체를 살핀다. 날짜가 왜 중요했는지, 증인이 어디에 이름을 남겼는지, 누가 문서를 대신 썼는지, 관아에 낸 청원과 관청에서 발급한 증빙은 어떻게 달랐는지 검토한다. 문서를 맞대어 다툰 사건과 오래 보관된 기록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래의 당사자가 죽은 뒤에도 누군가가 이전의 종이를 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장의 문서는 사건의 끝을 표시하면서 다음 사건의 자료가 되기도 했다.
토지·대여·노동·혼인에서 문서·증인·분쟁·보관까지. 이 책과 함께 주제를 이해하는 기준을 차근차근 세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