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IT 경영자가 11년 동안 절을 오가며
되찾은‘여덟 분의 이름’
진교문 와이즈레이크 대표,
『9월 보름, 여덟 분을 모시는 날』 출간
평생 새로운 기술의 첫머리에 서 온 IT 경영자가 이번에는 가장 오래된 의식인 제사에 관한 책을 펴냈다. 진교문 (주)와이즈레이크 대표는 신간 『9월 보름, 여덟 분을 모시는 날』(부제: 끊어진 뿌리를 다시 잇다)에서, 이름조차 잊혀 가던 윗대 어른 여덟 분을 한 날에 모시게 되기까지의 11년을 차분하게 기록했다.
이야기는 2015년 무렵 강원도 원주의 석경사에서 시작된다. 인행 큰스님은 처음 인연을 맺은 저자에게 “제사는 몇 분을 모시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아버지 한 분이라는 대답에 큰스님은 다시, 그 윗대 어른들은 누가 모시느냐고 물으셨다. 저자는 답하지 못했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유골을 제주 바다에 보내드린 뒤로, 집안의 발길은 오래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저자는 큰스님의 말씀을 하나씩 듣고 자기 집 형편에 맞게 옮겨 나갔다. 동사무소에서 원적 서류를 떼어 고조부의 성함을 처음 확인했고, 고조모는 ‘이씨’라는 두 글자로만 남아 계셨다. 유골도 유품도 없는 어른들을 위해 큰스님이 대추나무로 사람 모양을 깎아 주셨고, 저자는 이를 대리석 함에 담아 2021년 경기도 용인 백암면에 일곱 분을 한 봉분에 모신 가족묘를 세웠다. 오래된 삼척진씨 족보를 다시 펼쳐 직계만 추린 가승보를 만들면서, 자신이 삼척진씨 어모공파38대, 목포 온금동 문중5대 종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2024년 어머니가 일곱 분 곁으로 가시면서, 해마다 음력 9월 보름에 올리는 모듬제는 ‘여덟 분을 모시는 날’이 되었다.
이 책은 예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제기 한 벌 살 줄 몰라 매장 직원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던 초보 제주(祭主)가, 스승의 말씀을 듣고 서툰 정성을 해마다 다듬어 온 이야기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누군가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도 아니다”라고 밝힌다. 대신 한 번 끊어진 줄도 다시 이을 수 있다는 것, 거창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집의 시간으로 보여준다.
책을 관통하는 물음은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제사를 지내는가”이다. 저자가 11년 끝에 얻은 답은 단순하다. 제사는 복을 비는 일이 아니라 후손으로서의 도리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제사상 앞에서 아들과 며느리, 손녀들에게 한 번도 뵙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손녀들의 이름에는 집안의 돌림자‘태(泰)’를 넣었다. 제사가 낡은 짐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뒷부분은 실용서로서의 쓸모도 갖췄다. 7부에서는 임종부터 삼우제와 49재까지 장례의 흐름을, 8부에서는 십여 년 동안 다듬어 온 우리 집 제사 매뉴얼을 담았다. 제사상 차리는 법, 열한 단계의 제사 순서, 해마다 새로 쓰는 축문, 제사 장소가 바뀔 때 올리는 시제까지, 제사를 처음 시작하려는 가정이 곁에 두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