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가 33년에 걸쳐 바라본 죽음의 세 얼굴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
소설은 주인공의 부고로 시작한다. 동료 판사들은 신문에서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읽고, 슬퍼하기보다 그 빈자리에 누가 오를지, 자기 승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부터 계산한다. 이야기는 거기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삶을 보여준다. 법률학교를 나와 순조롭게 승진했고, 적당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했고, 남들 보기에 흠잡을 데 없는 집을 꾸몄다. 모든 것이 가볍고 즐겁고 품위 있게 흘러가던 어느 날, 새 집에 커튼을 달다가 옆구리를 부딪힌다. 사소한 사고였지만 이후 모든 것이 바뀐다. 통증은 가시지 않고, 의사들은 병명 대신 소견만 늘어놓고, 가족은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학창 시절 논리학 교과서에서 배운 삼단논법은 언제나 옳았다. 카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는 죽는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그 결론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는데, 있다.
거짓으로 둘러싸인 병상에서 그에게 진실을 건네는 사람은 젊은 하인 게라심 하나뿐이다. 게라심은 주인의 다리를 어깨에 올린 채 밤을 새우면서, 어차피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을 텐데 이 정도 수고가 대수냐고 담담하게 말한다.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몸만이 아니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옳게 살아왔다는 믿음까지 의심하기 시작하고, 사흘 밤낮 비명을 지른 끝에 전혀 다른 문 앞에 선다. "끝난 것은 죽음이다." 『참회록』을 쓸 무렵 깊은 정신적 위기를 겪은 톨스토이가 그 뒤 처음 내놓은 본격 소설이며, 나보코프가 톨스토이의 가장 완벽한 성취로 꼽은 작품이다. 길지 않은 분량 안에 한 인간의 일생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까지 빈틈없이 담겨 있다.
『세 죽음』(1859)
폐병을 앓는 귀부인은 외국에 가면 나을 수 있다고 믿으며 마차를 재촉한다. 남편도 의사도 이미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누구도 그 말을 꺼내지 못한다. 마차가 쉬어가는 역참에서는 늙은 마부 표도르가 난로 위에 누워 죽어가고 있다. 젊은 마부 세료가가 어차피 이제 신을 일도 없지 않느냐며 장화를 달라고 하자 노인은 순순히 내준다. 대신 무덤에 비석 하나만 세워달라고 부탁한다. 귀부인은 끝까지 원망과 두려움 속에서 숨을 거두고, 노인은 밤사이 조용히 떠난다.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던 세료가는 결국 숲에 들어가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베어 십자가를 만든다. 나무가 쓰러진 자리로 햇빛이 쏟아지고, 숲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더 환하게 살아 있다. 이 짧은 소설은 귀부인과 농부와 나무의 죽음을 나란히 놓는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두고, 거짓 속에 산 자는 비참하게 죽고 자연과 함께 산 자는 담담하게 죽으며 나무는 거짓 없이 아름답게 죽는다고 설명했다.
『습격』(1853)
20대 중반의 톨스토이가 캅카스에서 사관후보생으로 복무하며 쓴 초기작이다. 화자는 전투를 직접 보고 싶어 산악 마을 습격에 따라나선 자원병이다. 그는 출정 전에 노련한 흘로포프 대위에게 용기란 무엇이냐고 묻는다. 플라톤은 용기를 두려워해야 할 것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아는 일이라고 했다. 대위의 대답은 그보다 소박하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막상 습격이 시작되자 그것은 영웅담과 거리가 멀다. 병사들은 주민이 떠난 마을을 약탈하고 불태운다. 공을 세우고 싶어 안달하던 젊은 소위 알라닌은 단 한 번 돌격했다가 쓰러진다. 화자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람은 왜 서로를 죽이는가 묻는다. 이 물음은 이후 『세바스토폴 이야기』와 『전쟁과 평화』로 이어지는 톨스토이 전쟁 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왜 이 세 편인가
세 작품은 각각 1853년, 1859년, 1886년에 발표되었다. 20대 청년 작가의 소설부터 50대 후반 대가의 작품까지, 이 책은 톨스토이가 33년 동안 죽음이라는 질문을 어떻게 붙들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습격』에서 죽음은 전쟁터의 구경꾼이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건이다. 『세 죽음』에서는 서로 다른 세 존재를 나란히 놓고 견주는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이르러 마침내 죽어가는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바깥에서 곁으로, 곁에서 안으로 옮겨 가는 셈이다. 함께 읽으면 작품 사이의 연결 고리도 선명해진다. 『세 죽음』에서 귀부인을 둘러싼 거짓과 늙은 농부의 담담함은 근 30년 뒤 이반 일리치의 가족과 하인 게라심으로 다시 태어난다. 『습격』이 묻는 용기, 곧 두려워해야 할 것을 아는 일은 이반 일리치가 마지막 사흘 동안 홀로 치러내는 싸움에서 가장 깊은 답을 얻는다. 결국 세 편이 묻는 것은 같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