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더운 여름의 문턱에서 한국전쟁은 발발했다. 울산의 치술령 자락, 어느 일본인이 식민시대에 남긴 저택 안에 한 여자와 남자가 고립됐다. 여자는 친일 자본가의 딸로 동경 사교계에서 ‘하나[花]’라 칭송받던 남쪽 여인이고, 남자는 지하당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북에서 남파되었다가 낙오한 인민군 소년 장교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다른 두 사람은 식민시대의 유물인 저택 안에 갇힌 채, 또 하나의 작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연우(煙雨)란, 안개같이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한국전쟁은 이 소설 속에서 안개인지 비인지 모호한 연우(煙雨)처럼 온통 불투명성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미 제국으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남파되었던 소년 장교는 단 한 번도 미군과 대적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내내 동포들과만 총을 겨누고 싸워 온 그는 어느 날 전쟁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소소한 일상에 감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로지 제 몸의 안위를 위해 그를 이용하려 했던 친일 자본가의 딸은 목숨과도 같은 신념을 소유한 그 인민군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비록 그녀 자신은 그의 신념에 전혀 동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두 사람이 싸워야할 대상은 한국전쟁 그 자체가 된다.
남북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돼야 한다는 당위성 주장은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제기된다. 북을 부정하는 입에서도, 북을 긍정하는 입에서도 똑같이 통일은 주장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이 내놓는 방법론은 천양지차를 보일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가 갈수록 공허하게만 들리게 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분노와 상처는 옳고 그름, 합리성의 잣대로는 재단되어질 수 없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사건으로부터 성급히 민족통일이라는 거창한 결론을 도출해내기 전에, 그 사이에 존재하는 왜곡된 분노와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소설『연우(煙雨)』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했던 대하 역사로맨스 소설『비차(飛車)』(2005. 파란미디어. TV드라마 제작 중)에 이은 작가 서누의 두 번째 시대물이다. 작가는 작품후기에 “혁명은 사랑처럼 재창조되어야 한다”는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랑처럼 재창조되어야 하는 것은 비단 혁명뿐인 것은 아니라고 전한다. 전쟁과 분단을 바라보는 시선, 통일을 바라보는 시선, 그 모두가 사랑처럼 재창조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