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일본 문학이 사소설이 주류를 이루어가는 ‘흐름’을 무시하고 등단 초기부터 꾸준히 자기 색깔을 저버리지 않는 작가 마루야마 겐지. 이 책을 펼치면 촘촘한 문체와 정교한 구성을 특징으로 한 겐지가 젊은 시절에 쓴 중단편 소설과 만날 수 있다. 1966년 제23회 신인상과 제56회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여름의 흐름」을 비롯해, 중편 「좁은 방의 영혼」, 단편 「만월의 시」, 「바다」, 「흔들다리를 건너다」, 「한낮의 피리새」 등 6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상업주의를 배제하고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겐지 소설은 현실과는 다른 섬뜩한 세계를 그리면서, 현실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인물 간의 안이한 타협과 교감을 배제하고, 심지어 그들의 사랑과 꿈 등이 시각적 이미지로 차갑게 묘사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6편의 작품들은 작가 특유의 고집스런 서술 방식과 절제된 문장으로 현대인의 무기력과 절망을 탁월하게 형상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