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민 다 죽는다. 한미 FTA 반대한다."
2006년 3월 23일 미국산 칼로스쌀이 부산, 인천, 동해항을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상륙했다.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수입 쌀을 막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점거농성을 하던 부산, 경남지역 농민들은 '수입 쌀 절대 반대', '한미 FTA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외국 쌀을 실은 선박이 도착하자 하역작업을 막기 위해 부두 진입을 시도했다. 우리 농민은 "농민들을 다 죽게 만드는 미국 쌀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절규했다. 농촌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쌀 시장 개방은 잇따른 정부의 농정실패와 한국형 경제성장이 낳은 필연적인 산물이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서 쌀 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공산품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외국에서 값이 싼 쌀을 사 먹자'는 쌀 시장 개방론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쌀은 사회적 연대의 중심에 서 있다.
쌀도 상품인 이상 경제 논리에서 배제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 아래에선 농산물도 자유무역을 통한 개방에서 예외일 수 없으며, 시장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을 외국에서 사다 먹자는 주장에는 빼놓을 수 없는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식량안보다. 2000년대 들어와 세계 곡물 생산량이 감소한 반면 소비량은 증가해 재고량이 감소하면서 식량안보가 식량 수입국들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식량농업기구 (FAO) 는 2001년 11월 개최된 제 31차 총회에서 2004년을 '세계 쌀의 해'로 지정하기로 결의했으며, 2002년 12월 열린 UN 총회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2004년을 '세계 쌀의 해'로 공식 선포했다. 유엔은 이 자리에서 "쌀은 삶이다"며 쌀의 해 선정과 관련해 "쌀은 문화의 정체성과 지구적 연대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쌀은 세계화 시대 국제 연대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훌륭한 키워드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 영화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영화인들이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과 손을 잡았듯이 쌀은 사회적 연대의 중심에 서 있다.
"쌀은 한국인의 꿈이었다. 그리고, 유린당하는 한국인의 꿈"
살 시장 개방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쌀을 민족의 혼이요, 생명줄이라고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빠져 있다. 바로 쌀을 생산하는 농촌과 쌀을 소비하는 도시의 이해관계다. 농촌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쌀은 한국인 모두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었지만, 일찍부터 쌀을 둘러싼 농촌과 도시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이 농촌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서 진행되어 왔으며, 경제성장의 과실이 온통 도시에만 집중되어 온 이유로 농촌 문제에 대한 도시인의 양가 감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쌀 시장 개방의 책임을 정부와 쌀 시장 개방론자들에게만 돌릴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쌀밥 전쟁- 아주 낯선 쌀의 역사』는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오늘,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