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만큼이나 방대한 규모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 라인으로 소설 『파라다이스 가든』은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독자들을 사정없이 몰아친다. 이 작품은 낙원과 낙원의 충돌을 통해 서로 다른 낙원을 가진 인간의 자율성과 다원주의 문제를 넘치는 에너지로 거침없이 묘사한다.
주인공 김범오를 비롯해 원직수, 이명자, 강세연, 서병로, 김성효 등 주요 인물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세계를 꿈꾸며, 그 세계를 성취하고 지켜나가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그러나 투쟁은 상처와 자멸, 그리고 죽음을 부르는 법. “잠자리의 눈은 홑눈이 수천 개 모인 겹눈이다. 세상은 모자이크처럼 쪼개져서 인지된다. 새가 도약하고, 잎사귀가 떨리고, 거미줄이 흔들리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 그 모든 움직임은 잠자리가 가진 수천 개의 화면 속에 크게 과장돼 비춰진다. 잠자리는 자그마한 자기 행동반경에서 고작 열흘 안팎 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겹눈의 과장’을 통해 희로애락의 각 극점(極點)들을 다 맛보다가 숨지게 된다.”는 김범오의 깨달음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저마다 보는 눈이 다르기에, 지상의 낙원 역시 하나가 아니며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율성을 가진 인간 개개인의 홀로 서기에 다름 아니다.
또한 『파라다이스 가든』은 유토피아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유토피아인 도화원을 경험하고 온 어부 황도진이 그곳의 입구를 다시 찾지 못한 이유는 그가 큰돈과 논밭을 주겠다는 사람들의 유혹에 빠져 그곳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도화원과의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유토피아로 상징되는 수목원을 파괴하려는 자본주의의 축으로 성림건설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유토피아를 알아볼 능력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왜소하고 물질화된 행복 지수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