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2001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시인 이은림의 첫 시집. 시집 출간을 서두르지 않고 오래 묵혀온 만큼 이은림, 그녀라는 시의 더께를 탈탈 털어보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먼지인가. 눈물인가. 세월임을 알겠다, 하고 굽어보는 순간 느릿느릿 뒤로 걸어가는 한 여인이 있다.
시인은 태양에서 삶과 죽음의 양면을 읽는다. 삶이 뜨겁고 맹렬할수록 건조한 죽음의 얼굴은 노화가 빠르다는 걸 주름으로 확인한 탓이다. 태양은 풍요로우면서도 자애로운 얼굴빛과는 달리 삼키는 재주의 붉은 아가리를 감춘 두 얼굴의 가면, 이는 우리가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도 살아가는 삶의 모순과도 같다.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 우리의 삶도 그러한 반복이며 이는 지금껏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거나 소멸되어온 우리 인류의 상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시인은 태양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는 터, “여기만 관통하면 여행은 끝난다.”라고 했지만 “소금 사막 한복판”을 관통하는 또 다른 화살, 태양이 있는 한 우리의 사랑이자 삶이자 노래이자 비명인 시는 늘 쏘여져 종이의 맨살을 아프게 지질 것이다. 자발적 중독, 시라는 굴레를 아름다운 문신으로 새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