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7대 왕을 선정하여 저널리스트적인 예리한 시선과 돋보이는 감각적 필치로 그들의 빛나는 치적을 ‘리더십’ 측면에서 본격 분석하는 ‘이한우의 군주열전’ 시리즈가 『태종』 『세종』에 이어 『성종, 조선의 태평을 누리다』를 세 번째 책으로 출간했다.
저자는 전작의 두 왕들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른 입장에서 조선의 9대왕 ‘성종’에게 접근하고 있다. 『경국대전』을 완성했고, 활발한 친경(親耕) 활동으로 농사에 모범을 보였으며, 독서당 등을 설치하여 문운을 진작시켰을 뿐 아니라 『동국통감』, 『삼국사절요』,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오례의』, 『악학궤범』 등의 간행을 주도한 뛰어난 왕이자 위대한 성군이었다는 게 그에 대한 일반적인 후대의 인식이다.
저자는 600년을 이어온 이러한 평가에 팽팽하게 맞서 반론을 제기한다. 성종의 재위 시기가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였음은 부인하지 않지만 그 태평성대는 명백한 성종의 작품이 아니라, 세종에서부터 세조에 이르기까지 선대가 이룩한 업적의 최고 절정을 단지 ‘누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성종의 집권을 거친 뒤부터 조선은 쇠퇴의 일로를 걷는다. 훈구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신진 세력 도입을 시도해 보지만 몸부림에 지나지 않고, 조선 최초의 폐비 사건이 비극적인 연산의 운명을 만들었으며, 중종 이후 펼쳐지는 사림의 득세는 세도정치로 이어지면서 결국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록』이라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토대 위에서 이 반론의 모든 근거를 꼼꼼하고 명백하게 제시하며 성종의 치적을 뒤쫓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과 새로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한명회를 비롯한 외부 세력의 시나리오에 의한 재위 과정은 그의 왕권 강화를 어렵게 했고, 7년이라는 긴 기간의 수렴청정과정을 거쳐 친정 체제에 돌입했지만 결국 정희대비, 인수대비, 인혜대비의 3전과 한명회의 세력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학문에서는 확실한 성리학 애호가였기에 그에 따른 문운의 발전이 있었지만 성리학의 특성인 명분이라는 굴레를 넘어서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를 보였을 뿐 아니라,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필수 불가결한 현실적 과제는 외면한 채였다. 또한 인간적이고도 남성적인 무신의 기질은 돋보이는 점도 있었으나 결국 이에 연유해 사냥과 활쏘기, 주색잡기의 탐닉에 이른다. 북정(北征) 역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한편, 사림의 진출을 꾀함으로써 훈구를 견제하며 왕권의 안정을 누렸다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성종의 새 세력은 중․하위직의 소수에 그쳤을 뿐, 국정의 중심에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종은 어떻게 성군으로 치장된 것일까? 그 이유를 저자는 조선이 성리학의 나라였다는 데서 찾는다. 현실적 실리보다 명분을, 일하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을 중시한 조선은 문약한 ‘선비의 나라’였고, 성리학자들이 붓을 잡고 기록한 역사는 당연히 성종에게 후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런 문약의 전통은 한국인에게 여전히 선비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성종에 대한 환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리민복과 부국강병’의 정치를 실현해줄 리더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성종의 치적을 뒤쫓으며 과대 포장된 옛 평가의 정당성을 날카롭게 되묻는 이 과정은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의 해답을 찾는 역사 탐구의 진정한 가치가 발휘되는 순간이자 지금의 우리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