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다
어느 날 같은 동네 아이로부터 ‘주워 온 아이’라고 놀림을 당한 사요코. 생각해 보니, 자기는 엄마 아버지도 닮지도 않았고, 갓난아기 때 사진도 없다. 미심쩍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사요코는 엄마 아버지는 물론 가장 친한 친구인 미키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감춘다. 사요코가 사는 곳은 ‘어두운 골목’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허름한 연립단지. 벚나무를 키우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속에만 담고 살아가는 유키코 아주머니, 언제나 술에 취해 소란을 벌이는 미키 아버지, 사요코를 동생처럼 아껴주지만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시집가는 옆집의 예쁜 시노부 언니……. 이런 사람들이 얽히고설켜서 살아가는 1960년대의 풍경이 작품의 배경이다. 컬러텔레비전이 들어와 작은 소동이 일어나고, 지장보살 축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동네 전체가 활기에 넘치며, 홍수가 지고 사카모토 할아버지의 전당포에 원인 모를 불이 났을 때는 동네 전체가 술렁이기도 한다. 이런 어른들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사요코는 성장기를 통과한다.
인생의 깊은 의미를 묻는 작품
사요코는 정말로 다케시 오빠를 만나게 된다. 창고로 갔다가 자전거에 커다란 배낭과 짐을 싣고 온 건장한 청년을 보는데, 그 청년이 “나를 기억하니?” 하며 말을 건넨 것이다. 엄마는 다케시가 사촌오빠라고 했지만, 사요코는 끝까지 진짜 오빠일 거라고 믿는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빠이지만, 사요코는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끝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작품의 마지막은 오빠가 선물로 사준 자전거를 타고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장면이다. “나는 전속력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바람 속으로 언덕이 사라졌다. 돌아오는 강의 물도, 꿈의 부교도, 태풍도, 골목 안의 집들도, 오늘 아침에 심었던 벚나무도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갔다. 우리는 모두 바람 속에 있었다.”
어린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에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숙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헤어지기 전에 ‘인생이란 여관처럼 잠시 들리는 곳’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이불집 할머니, 화재가 나서 다 타버린 전당포를 바라보면서 ‘인생은 본래 비어 있는 것이라 이제 자유롭다’고 중얼거리는 사카모토 할아버지, 자신이 기르던 벚나무가 불에 탄 뒤 동네 사람들에게 벚나무를 한 그루씩 선사하는 유키코 아주머니……. 이들은 모두 사요코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그 시절의 사람들’이다. ‘어두운 거리’, ‘돌아오지 않는 강’, ‘꿈의 부교’, ‘숨어 있는 물’ 같은 지명에 담긴 상징과 은유는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묵직한 철학적 주제가 담긴 이 작품에 윤기를 더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