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스개의 힘
옛날 우스개 가운데에는 유명인들의 실화가 많다. 대를 이어 영의정이 되었던 홍섬이 밤에 계집종을 친압하다가 아버지 홍언필에게서 혼쭐이 난 이야기, 사위인 이항복에게 속아 왕과 대신들 앞에서 맨발을 드러내야 했던 권율 장군 이야기, 『설공찬전』의 작가인 채수가 세조의 부마이자 당대 최고 갑부였던 하성부원군을 놀려 먹은 이야기 등은 저자가 말하듯이, 평소에 ‘존경스럽고 두렵던 대상’을 한순간에 희화화하는 웃음의 힘을 보여준다.
물론, 무명초들의 우스개도 많다. 양반 잔치에 불려나와 노리개가 되었건만 웃음의 자락을 놓지 않아, 촌철살인의 재담으로 양반을 놀려먹던 기생들 이야기, 영화 ‘왕의 남자’에도 등장했지만, 재담으로 탐관오리의 목을 날렸던 광대 공길이의 이야기, 재치 있는 농담으로 인색한 친구에게서 술안주를 빼앗아 먹었던 가난한 서생의 이야기, 허세 부리는 양반을 골려 먹은 영리한 중 이야기 등, 우스개가 아니었다면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의 삶이, 저자가 소개하는 기록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런 우스개를 읽는 독자가 실성한 사람처럼 너털웃음을 터뜨리거나, 때로 콧등이 시큰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설화가 갖고 있는 힘 때문이다.
우스개의 논평
저자는 단순히 옛날 우스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랬다면 한동안 시중에 떠돌던 ‘고금소총’의 새로운 편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책은 희극적 효과가 발행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그리고 수사학적으로 분석한 진지한 연구서이기도 하다. 우스개라는 서사 형식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등장인물들, 예를 들어서 긍정적인 뜻의 속임수를 사용하여 권세가를 놀려 먹는 인물 트릭스터trickster나 그 속임수의 희생자가 되는 인물 듀프dupe에 대한 분석은 학문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또한, 농담과 익살에 대한 구분도 저자의 뛰어난 변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항복의 우스개가 장인의 버선을 벗기는 것과 같은 실제 장난practical jokes을 포함하여, 한 마디 말로 끝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에 의존한다면 조위한의 유머는 장황하지만 잘 짜인 치밀한 서사와 연기력에 의존한다. 조위한은 익살의 제왕이라고 할 만하다. 농담꾼이 한걸음에 달려간다면 익살꾼은 마실 가듯, 느릿느릿 걷는다. 이항복의 우스개가 한 번 맛보면 잊기 힘든 톡 쏘는 청량음료라면 조위한의 우스개는 음미해보아야 비로소 맛이 나는 전통 차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