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과 추리의 절묘한 조화
1720년의 남해 회사 거품 사건! 이 사건은 영어권 국가에서 발생한 최초의 주식 시장 붕괴 사건인 동시에 런던 금융 시장의 혼란과 과열 현상이 최고점에 이른 시기를 의미한다. 18세기 초반 영국에서는 주식 거래, 국채, 복권이 생소한 개념이었고, 새로운 경제 체제로 인한 불확실성은 증권 골목을 열기로 몰아넣었다. 다니엘 디포와 같은 유명인을 포함해 많은 사상가들이 금융 시장을, 성공을 약속하는 놀라운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고 파멸을 부르는 불길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종이의 음모』는 남해 회사 거품이라는 증권 금융계의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과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실제 얘기를 그린 소설로, 1700년대 영국 뒷골목의 생활상과 주식시장의 기본 원리, 인간보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원리, 유대인에 대한 배척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최고의 역사 스릴러다.
또한 이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전적으로 가공인물이지만, 작가 데이비드 리스는 18세기의 저서들이나 역사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성격을 빌려와 현실감을 부여했다. 주인공 벤자민 위버라는 인물이 실존하지는 않았지만, 이 인물은 자신을 ‘과학적인 권투 기술’ 개념의 창시자로 소개하고 훗날 전문적인 빚 수금 대행업자가 된 다니엘 멘도자(1764~ 1836)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하게 되었다. 반면, 이 소설에서 주인공 위버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조나단 와일드와 그의 부하 멘데스, 그리고 아놀드는 상당 부분 변형이 가해지긴 했지만 실존 인물들이다. 와일드는 1710년대 중반부터 1725년 사형에 처해질 때까지 런던에서 수많은 범죄를 주도했으며, 현재까지 최초의 현대적인 범죄단 두목으로 꼽히고 있다.
1720년대의 충실한 역사 고증과 함께 현실감 있는 인물 묘사로 지난 3백여 년 간 증권업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 금융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종이의 음모』는 경제와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과 추리가 절묘하게 녹아 있는 대단히 지적인 소설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육중한 울림을 선사하며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