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한 이미지 구사와 육체를 왜곡하고 비트는 방식으로 현실의 불모성을 드러내어 크게 주목받았던 유홍준 시인의 두번째 시집.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세계의 폭력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어머니상을 섬뜩하게 전면화하던 시세계가 조용하게 무르익은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아버지-세계와의 관계를 좀더 구조적으로 넓고 깊게 탐색하여 자기 자신이 그 세계의 일부임을 고백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인상깊게 그려진다. 더 능수능란해진 시어구사와 활달한 기량으로, 숙련공의 모습으로 돌아온 시인의 성숙한 삶의 자세가 돋보인다. 자신의 ‘흉터’로 가난한 다른 생의 모습까지 보듬는 너른 시선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