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명인의 산문집. 1973년 “운좋게도” 시인이 된 지 어느덧 삼십삼 년이 훌쩍 지났고, 그 동안 펴낸 시집만도 여덟 권이지만 산문집은 처음이다. 이 산문집은 시인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독자들에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별한 자리가 될 터이다.
시인은 이제 그 “시가 빚지고 있는 체험들”을 불러오려 한다. 저 멀리 뒤돌아보려 한다. 이야기는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시인 또한 그 혼돈의 중심에서 비껴날 수 없었다. 전쟁은 작은숙부와 큰숙부, 큰고모부를 죽였고, 아버지의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다. 점점 기울어갔던 가세는 시인의 어린 시절에 지울 수 없는 그늘을 드리웠으니, 아마 시의 절망은 이때 이미 운명지워졌을 것이다.
시인이 살아온 지 육십 년, 시를 써온 지 삼십삼 년, 그 긴 세월 동안 시인과 늘 함께해온 것은 바로 바다였다. 바다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시인이 처음으로 접한 최초의 세계였고, 유년 시절의 넘어야 할 벽이었으며, 시를 쓰면서는 시인의 상처를 어루만져준 마음의 고향이었다. 시인은 “출렁거림이 할 일의 전부란 듯이 저렇게 고즈넉한 바다”의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이루어온 시의 시간을 돌이켜본다. 실존의 시간이지만, 우주의 시간에 귀속되어 있는 시의 시간을.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금 시쓰기를 다짐해본다. 1973년 시로 향했던 출항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