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 전근대 시기의 과학은 아직까지 미개척 영역에 속한다. 비록 최근에 이르러서는 연구의 양과 질의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과학사는 한국학의 다른 분야와 비교해 볼 때 아직까지 부족하고 협소한 상황이다. 따라서 과학사의 탐구는 한국학의 균형적 발전을 촉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국과학사에서 영·정조 대는 세종 대와 함께 주목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관심이 조선시대 과학사의 전개 과정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적 견해가 일찍부터 제기되었고, 그에 동조하는 연구 경향이 학계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영·정조 대가 여전히 흥미로운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지금까지 영·정조 대의 과학사 연구는 ‘실학(實學)’과의 관련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 성과물은 조선 후기 문화의 새로운 기운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영조 대의 문화를 과학이라는 관점에 천문역산학을 비롯한 과학 전반의 발전 양상을 살펴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조 대의 과학 활동과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점에 주목하였다. 하나는 국왕 영조를 정점으로 해서 정부 주도로 추진된 과학과 관련된 국책 사업이었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와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편찬, 관상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시헌력(時憲曆) 체계의 도입, 의상(儀象)의 중수(重修)와 서양 천문의기의 수입, 그리고 두 차례의 준천(濬川)사업이 그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조 대에 활발한 학문 활동을 전개했던 관인(官人)·유자(儒者)들의 과학 담론이었다. 영조 대에는 한국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거장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학문적 연원이나 정치적 입장이 같지 않았고, 과학에 대한 관심과 깊이, 과학 탐구의 목적과 지향도 상이했지만, 과학을 자신의 학문 체계 내에 포섭해서 자기 나름의 성취를 이룩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관을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책은 시대적 배경과의 유기적 연관 속에서 영조 대의 과학 활동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와 후대에 끼친 영향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