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북한 땅에서 잉태된
그와 그녀의 가슴 저린 순애보
숨 막힐 듯한 북한의 체제 속에서도 어김없이 사랑은 피어난다. 그 빛깔은 어떨까. 어두울까, 밝을까, 흐릴까, 맑을까. 소설《선희》는 얼어붙은 땅, 동토의 북한에서 벌어졌던 실제 남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탈북자 2만이 훨씬 넘은 시대다. 북한이 익숙해진 만큼 많은 매스컴에서 교양ㆍ오락적으로 그들을 다루고 있다. 남한 남자와 북한 여자의 파트너 체험이라던가, 북한의 생활상을 전하는 토크쇼도 있다. 체제나 인권에 대한 보고서, 탈북 수기 형식의 책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개개인의 깊은 삶의 ‘무게’를 담은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여전히 어두운 체제 안에서 고난의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사랑’은 잘 모른다. 그런 점에서 북한 독재 정권 아래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남녀의 삶과 사랑을 그린 정통 소설《선희》가 던지는 의미는 크다.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힌 집안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살아가는 남자. 가족을 잃고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여자.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아래서 만난 그들은 생계를 위해 기차 지붕 위에 몸을 싣고, 사랑을 위해 중국행을 택한다.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이들의 삶은 ‘낙엽’ 같다. 가난과 독재라는 절망의 땅 북한, 그러한 북한사람들을 착취하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중국에서의 삶은 처절하다. 하지만 금세 바스라질 것만 같은 이들에게도 사랑의 색채가 있다. 그 검붉게 남아 있는 낙엽의 빛깔이 둘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선희》는 실화만이 가지는 묵직한 무게감과 삶에 대한 차분하고 건조한 문체를 특징으로 한다. 생존 앞에서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다. 어쨌든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묵직하고 차분한 ‘생(生)에의 의지’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이러한 고난의 삶에도 희망은 역시 ‘사랑’이다. 저자는 사랑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본능임을 강조하면서, 그 인간 본능조차 유린당해야 하는 북한의 상황을 소설을 통해 가슴 절절하게 전하고 있다. 이 가을, 그 여리고 안타까운 낙엽의 ‘순애보’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