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뇌과학의 시대이다. 이제는 너무나도 흔해진 이 선언은 단지 지금까지 미지의 영역으로만 남았던 뇌의 메커니즘이 더 많이 밝혀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생의학 분야와는 달리 뇌과학은 단순히 인체의 물리적 속성과 작동 기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마음, 즉 심리상태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뇌과학이 거둔 성과는 그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 즉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석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형태의 살인사건에 대해 과거에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혹은 개인의 성장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면, 이제는 뇌과학자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즉 일련의 극단적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들의 뇌영상을 보고, 그들의 뇌가 다른 보통 사람들의 뇌와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분명한 차이점은 있었다. 전두엽이 손상되었고, 공격성을 좌우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 발생한다. 그에게는 과연 죄가 없는 것일까? 과거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유죄를 판결했겠지만, 이제 그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뇌의 잘못된 메커니즘에 따른 행동임이 밝혀졌는데, 과거와 똑같이 그를 판단해야 하는가? 뇌과학은 인류에게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내 탓인가, 뇌 탓인가?
뇌과학, 인간 본성의 비밀을 말하다
뇌과학을 넘어선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
2008년 5월 서울 ‘월드사이언스 포럼’ 강연대에 선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대 심리학과 교수 마이클 가자니가. 30분 가까이 뇌과학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 가자니가는 사실 국내 일반 대중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그러나 세계적인 뇌과학자다. 그는 로저 스페리와 함께 분할 뇌 실험을 이끈 장본인으로, 뇌영상을 통한 마음의 기능을 탐구하는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이라는 제2세대의 인지과학분야를 개척한 인지과학자, 신경학자이자, 심리학자, 신경윤리학자이다. 또한 단순히 뇌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뇌의 사회적·법적·철학적 함의에 대해 심리학자, 법학자, 철학자들과 함께 국가 프로젝트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경윤리 분야와 관련한 조언과 정책 입안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이 책 《뇌는 윤리적인가》는 마이클 가자니가의 이름을 과학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알린 대표 저작으로, 신경과학 연구자들뿐 아니라 철학자, 정치인, 사회학자들에게도 필독서로 자리매김한 책이다. 기존의 수많은 뇌과학 관련 책들이 대부분 뇌의 구조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집중한 반면, 이 책은 이처럼 발전한 뇌과학 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탐구한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뇌와 관련한 ‘기묘한 이야기’ 내지는 ‘뇌 활용 학습법’에만 집중되어 있는 국내의 뇌과학 관련 시장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영역인 ‘신경윤리학neuroethics’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은 현대의 뇌과학적·신경학적 성과와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윤리적·철학적 함의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특히 뇌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시작과 끝에 대한 새로운 정의,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환경 요소와 유전 요소의 중요성, 뇌영상을 통한 거짓말 탐지기(뇌지문)의 한계와 프라이버시 문제, 인지 능력 향상 약물의 윤리적 문제, 뇌영상을 통한 범죄자 판결 기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신경윤리적 쟁점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