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시인선 188권. 2008년 『리토피아』로 등단한 김사람 시인의 첫 시집이다.
김사람의 시집은 거대하고도 정교하게 짜여진 한 편의 악몽을 재현한다. 이를 위해 시인은 주체가 바라보는 대상의 이미지들을 절단하거나 훼손하기도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삶과 죽음의 순간들을 뒤섞어놓기도 한다. 어느새 그의 시들은 다시 한번 격렬하게 몸을 뒤척여 순식간에 뒤죽박죽의 악몽으로 돌변한다. 이 악몽의 전체적인 구조나 또는 발원의 지점을 알아내는 일은 불가능하게만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악몽은 침대 머리맡에 붙박힌 무기력한 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동일한 패턴으로 얽혀 꿈틀대는 현실적 운동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꿈이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에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김사람의 악몽은 현실을 정확히 자각하는 그 지점에서 새롭게 엄습해온다. 게다가 불친절하게도 이 시집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도,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약할 수 있는 어떤 발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시인조차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죽은 것들만 생각하다 죽어갔다”(「백워드마스킹」)는 선언으로 자신의 시집을 마무리함으로써, 자신이 애써 준비한 의미들이 완성되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서 해체와 재반복을 다짐하고 있는 장면을 접하고 나면 섣부르게만 여겼던 판단에 어느 정도 확신을 얻게 된다. 저자는 시인이 되고 싶어 계속 시를 쓰고 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시 쓰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