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지역은 한반도 동남부의 동해안 연안에 자리 잡은 해읍(海邑)이다. 해읍으로서는 드물게 반촌이 발달하고 유교문화의 뿌리가 깊은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찍이 유학이 보급되어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동해바다와 영해평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풍부한 물산을 기반으로 각지에 집성촌을 형성하여 골골이 유수한 반촌을 발전시켰다.
또한 영해지역은 거친 바다로부터 생존자원을 거두어들이는 어촌이 해안을 따라 분포해 있다. 경사가 심하고 배후에 농경지가 협소한 지역적 특성은 어민들의 생활을 더욱 힘겹게 하였다. 영해지역은 반촌문화와 어촌문화를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연구대상 지역사회이다.
영해지역은 고려시대 이래로 동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종3품의 도호부사(都護府E使)가 오늘날의 영덕군 지역뿐만 아니라 청송, 영양, 울진 일부 지역까지 포괄하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였다. 흔히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어질 만큼 무향(武鄕)으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는 이 지역에서 무과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이 지역에 정착한 주요 가문의 입향조나 현조들 중에는 무관출신이 많았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유학이 전래되어 학문을 숭상하는 문풍이 진작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에는 퇴계의 학맥을 이은 많은 유학자들이 학문에 진력하여 다수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영해지역은 예향(禮鄕), 문향(文鄕)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들은 동해바다와 영해평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풍부한 물산을 기반으로 각지에 집성촌을 형성하여 세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