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나는 가나와 한국의 1960년대 초반 경제 자료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 반면 이런 비약적인 발전이 가나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내가 볼 때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22인의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이 다양하게 펼쳐내는 문화론에 앞서 새뮤얼 헌팅턴은 문화의 '결정적인'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서문에서부터 다짜고짜 칭찬을 받고 보니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가나와는 달리 우리 한국 사회가 가진 훌륭한 문화가 대체 어떤 것일까? 한국사회를 다른 사회와 비교할 때면 늘상 우리를 괴롭혀 온 열등감은 대체로 '문화적 척박함'이라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자의적으로 문화를 '한 사회 내에서 우세하게 발현하는 가치, 태도, 신념, 지향점, 전제 조건 등'이라고 규정한 뒤, 그러한 주관적 관점에서 파악된 문화가 한 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수준을 탐구하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인정받아도 좋은 걸까 하는 의문이 가시지는 않는다. 실제로 22명의 학자가 논의의 도구로 삼고 있는 '문화'의 테두리는 조금씩 달라진다. 또한 '경제 발전에 있어 문화가 대부분의 역할을 한다'거나, '문화가 민주주의를 형성한다', 혹은 '문화의 변화 없이는 위기만 증폭될 뿐이다'라는 책의 통일적인 논조에는 이견의 여지가 있을 것이니, 다소 학문적인 논의라는 점을 고려하고 꼼꼼히 읽을 일이다.
로 미래사회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 새뮤얼 헌팅턴이 편저자로 참여하고 있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는 이 책은 냉전 시대의 새로운 흐름으로 학계를 지배하던 문화 논의가 뚜렷한 성과 없이 잦아든 상황에서 문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동안 출판계에서는 독자들의 이국 취향을 자극하며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회의 이모저모를 알리는 소개서들만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문화에 대한 시각은 조금쯤 가벼웠던 것 같으니, 문화 자체에 엄청난 크기의 방점을 찍어주는 이 책에 조금 더 기대를 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