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하라
조선은 병자호란 때 한번 망한 셈이다. 오랑캐라고 얕봤던 족속에게 짓밟혀 수백 년간 부끄러워했다면 우리는 실패원인부터 스스로의 약점까지 철저히 분석했어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와 악연으로 맺어진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기가 되었다. 한민족에게 치욕을 안긴 ‘기분 나쁜 원수’로 단정해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4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 병자호란의 굴욕을 제어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고, 만주족을 라이벌로 여길 필요성은 사라졌으며, ‘오랑캐에 항복했다’는 마음의 상처도 아득한 옛 기억일 뿐이다. 이제라도 홍타이지와 만주족의 혈관이 펄펄 뛰던 시대상과 조선을 침공한 배경, 당대 동아시아의 국력 동학(動學)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는 창(窓)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약했고 라이벌은 강했던 시절, 우리를 쳐부순 상대를 통해 스스로의 민낯과 강약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