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의 시인 최문자의 다섯 번째 시집. 1982년 등단 이후 근 이십 오년 동안 다양한 시적 세계의 변모를 펼쳐온 시인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면 그건 바로 올곧은 시심인바 이번 시집 속에서도 순결한 그 정신은 특히나 빛나고 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었듯 시인의 이번 시집 속 기저는 ‘믿음’에 있다. 이 때의 믿음은 사랑, 시, 종교, 사람, 이 모든 주제에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세상사의 잔물결에도 몸과 마음에 주름을 입는 시인의 순수하고 여린 감수성에서 비롯될 것이다. 믿는 버릇이 있는 그녀는, 피가 날 때까지 믿는 그녀는, 금방 날아갈 휘발유 같은 말도 믿는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 그녀는, 그러니까 “못 뽑힌 구멍투성이”로, “믿을 때마다 돋아나던 못, 못들을 껴안아야 돋아나던 믿음”으로 “매일 밤 피를 닦으며 잠이”들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동심어린 아이의 눈이라고 할 수 있을 시인의 오감은 그러나 놀랍게도 세상 가장 무겁다랄 수 있는 죽음과 절망과 분노에 또한 쉽게 가 닿는데, 그래서 울컥하고 그래서 비릿하며 그래서 어둡지만 신기하게도 그 끝에는 언제나 또 다른 희망이 가 앉는다. “산다는 건 세상이 나를 질겅질겅 밟고 지나가는 말발굽 같은 식사”지만 그럼에도 꼭두새벽에 “숟가락 하나 들고 나”서게 하는 거, 아무래도 그 지점에 삶에 대한 믿음이란 부드러운 연골이 탄탄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