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의 기본서 《의례(儀禮)》의 국내최초 완역본
《의례》는 《시(詩)》, 《서(書)》, 《악(樂)》, 《역(易)》, 《춘추(春秋)》와 함께 6예(藝), 즉 6경(經)의 하나로, 주(周)나라 때 공자(孔子)에 의해 처음 정립되었다고 일컫는다.
‘의례’라는 명칭이 언제 출현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고찰하기 어려우나, 선진(先秦) 시기에는 보통 ‘예(禮)’라고만 칭하였으며, 때때는 ‘예경(禮經)’, ‘사례(士禮)’, ‘예기(禮記)’ 등으로 칭하기도 하였다. 여러 문헌을 고찰해보면 아무리 늦어도 동진(東晉) 원제(元帝) 때에는 이미 ‘의례’라는 명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조선시대 후기를 예학의 전성시대라고도 부른다. 성리학과 더불어 조선시대 유학을 특징지을 수 있는 두 개의 큰 물줄기 중 하나인 예학의 출발점은 《의례》·《예기》·《주례》로 대표되는 三禮이며, 이 삼례 중에서도 《의례》는 가장 근본이 되는 經이다.
《의례》가 비록 예의 기본서라고 하지만 대부분 오늘날 사용하지 않는 것이어서 그만큼 공부하기가 어려우며, 더구나 당시에 예를 행하던 실물이 없어진 상태에서 행동규범만을 설명하다 보니, 그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다. 십삼경주소본(十三經注疏本)이 있지만 주소(注疏)에 대한 옳고 그름의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역시 난해하여 경전이나 문집을 보다가 《의례》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겨우 글자를 맞추어 강의하거나 번역할 뿐이었다. 일반인들이 연구를 꺼리는 첫 번째 경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예학을 전공한 분들이 있지만 대부분 예서의 기본 실력이 부족하여 예경의 원전을 대하면 구두가 떼어지지 않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중국과 일본의 연구와 역서가 있어서 그것을 보고 따라하는 걸음마 단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근래 중국의 학자인 양천우(楊天宇)의 《의례역주(儀禮譯注)》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역주본은 현재 나온 《의례》 주석서 중 가장 자세하여 《의례》 초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 아직까지 1종의 완역서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그 연구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에 (구)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현 한국고전번역원)의 연수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李常娥, 朴相今, 崔振 女學士 3인방이 수년간 양천우의 《의례역주》를 대본으로 하고 여러 주석서들을 참고하여 강독한 다음 번역과 수정을 반복하여 이제 그 첫 작품인 《국역의례》-상례편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