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성 영미문학 연구자 로즈메리 잭슨의 환상문학에 대한 보기 드문 본격적인 연구서. 환상문학은 그간 여러 논자들에 의해 문학의 하위 장르로, 혹은 대중문학의 하나로 과소평가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문학의 위상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그것의 문학사적 가치는 물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탁월한 시각으로 분석한다.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적인 방식에 근거해 환상문학의 전복적 의미를 세목세목 밝혀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환상성에 관한 현대의 고전이라 불릴 만하다.
저자는 환상문학의 특성을 '전복'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베스트셀러 환상물 작가들인 루이스(C. S. Lewis), 톨킨(J. J. J. Tolkien), 르 귄(Ursula Le Guin)에서부터 포, 디킨즈, 도스트예프스키, 호프만 그리고 카프카와 토마스 핀천에 이르기까지 환상문학의 풍요로운 텍스트들을 탐사하면서 잭슨은 환상문학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빼어난 통찰을 펼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이론' 편으로 환상물이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과 그 가능성을 살핀다. 여기서 저자는 츠베탕 토도로프의 환상문학론에 크게 힘입고 있긴 하지만 그의 관점을 수정한다. 잭슨이 생각하는 진정한 환상문학이란 전복의 문학이다. 자본주의의 세속문화를 태생의 뿌리로 삼고 있는 환상문학은 본질적으로 지배 문화의 바깥쪽에 있는 현실 세계의 다른 축이다. 억압적이고 불충분한 경험 세계의 질서를 구조적으로, 그리고 의미론적으로 해체시키고자 하는 무의식이 환상문학의 핵심이다.
2부 '텍스트' 편은 1부의 이론적인 논의를 토대로 환상문학 작품을 실제로 분석함으로써 환상문학의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있다. 잭슨은 주로 19세기 유럽의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하되 최근의 소설들도 논의에 포함시킨다. 그녀는 환상문학을 크게 다음 네 가지로 나눈다. 19세기의 전형적인 환상담론인 '고딕 이야기'들, 사실주의 소설 속에 고딕 시퀀스들을 삽입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있는 '환상적 리얼리즘'(디킨즈, 도스토예프스키), 현실을 완전히 초월한 이차 세계를 다루는 '빅토리아 시대의 환상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프카의 {변신}에서 토마스 핀천의 [엔트로피]에 이르는 '최근의 환상물'. 잭슨은 이들 텍스트를 정신분석학적이면서도 사회 정치적인 방식으로 분석함으로써 동일한 기준으로 포괄되지 않는 다양한 환상물의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인 함의를 밝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