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음악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라고 내심 기다렸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클래식 애호가인 김갑수가 날카로운 귀를 가진 전문가로, 깊은 감수성을 가진 시인으로, '순정'을 그리워 하는 보통의 40대로, 자유스럽게 써내려간 글들을 모았다. 음악을 매개로 삶의 다양한 모습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클래식 전문가가 쓴 책이라 하여, 미리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담고 있는 이야기와 체험이 조금씩 틀리고, 그 '난이도'도 틀려서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깃털처럼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와 고통을 투사한 음반 감상기가 있는가 하면, 음악 감상실 '르네쌍스'를 둘러싼 젊은 시절의 유쾌한 기억들도 있다. 매니아 이야기의 단골인 음반 수집 과정의 에피소드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특이하게도 팝과 록음악에 대한 글이나 영화에 대한 에세이가 들어 있다. 몇 넌전 심야 록 음악 프로 DJ까지 맡았던 경력답게 마릴린 맨슨, 섹스 피스톨즈에 테리 리드의 이야기까지! 주관이 뚜렷한 그인만큼 분명하게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하므로 100% 공감할 수 없을 순 있지만 이들을 매개로 풀어내는 그의 생각들은 솔직하고 자유롭다. 등의 영화평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이 책이 음악책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음악이 밤하늘의 달이라면, 이 글은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 그 손가락이 그리는 안타까운 손짓에는 수많은 표정이 있고 욕망의 몸부림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이야기리는 것이다. 사람마다 '달'은 다를 수 있기에 음악 대신 자신의 관심사로 바꾸어, 그 표정과 손짓을 읽어도 상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들어라라고 말해온 저자인만큼 이번에도 음악의 위대함을 전하고픈 유혹은 어쩔 수 없었던 듯.
글의 말미에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의 클래식 입문기,가이드, 추천곡을 따로 실어 두었다. 20여곡의 추천곡에 대한 짧은 해설은 책장을 덮는 독자들에게 꽤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