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사회주의의 꿈을 여전히 간직해도 되는 것일까?
이 책은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논쟁 범위의 포괄성, 논의의 논리성, 논의의 저변에 흐르는 좌파적 신념의 치열성 등으로 사회주의 문헌사상 가장 탁월하고 날카로운 기념비적인 글로 평가받고 있는 이 저작은, 개혁과 혁명, 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관점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래서 훗날 ‘반레닌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 불리게 되는 급진적인 관점을 대표하는 고전적 저술로 자리매김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늘 혁명을 부르짖으며 몸소 혁명을 주도하고 참여했던 진정한 혁명가였다.
그는 사회주의를 진전시키고 실현할 주체는 오직 대중뿐이며, 대중이 주도하는 혁명을 통해서만 진정한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기조에서 씌어진 이 책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진실한 사회주의를 향한 깊은 열망이 담겨 있다.
-저자-
그는 유럽의 작은 파리라 불리는 폴란드의 자모슈치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유대인 가정의 오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장난기가 많은 소녀였다. 다섯 살 때 앓은 병으로 평생 한쪽 다리를 절었어도 발랄함을 잃지 않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당시 폴란드를 지배하던 제정 러시아 정부가 반정부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혁명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아직 젊고 미숙했지만 진정한 혁명가로서의 활동력과 지도력을 발휘하던 그는 러시아 정부에 체포될 위기에 직면한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도주한 그는, 유대인이라 해서 여자라 해서 입학을 거부하지 않는 취리히 대학 철학학부에 등록한다. 다음해 학부를 법학부로 옮겨 국민경제학과 공법을 공부해 1897년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후 꾸준히 사회민주주의를 몸으로 실현하던 중, 1898년 베를린으로 건너가 독일 사회민주당의 좌파 지도자로 활동한다. 그리고 1905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곧장 바르샤바로 가 투쟁에 참여한다. 혁명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던 그는, 혁명은 대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야만성과 사회주의 혁명의 불가피성을 열렬히 옹호하던 그는, 반전투쟁을 꾀하는 소수의 사회주의 단체인 스파르타쿠스단을 조직하게 된다. 이후 반전 시위를 주도하다 1916년에 체포되는데, 이듬해 11월 독일혁명을 계기로 풀려나 혁명 투쟁을 벌이다가 다시 체포된다. 감옥으로 호송되던 중 반혁명군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근원적인 이념에 충실했던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탁월한 정신과 혁명을 향한 열정으로 동료 사회주의자들을 끝없이 고무시켰다. 동료들은 그를 높이 비상하는 독수리, 철의 여인이라 불렀다. 주요 저작으로는 《자본 축적론》,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러시아 혁명》 등이 있다.
-역자-
당시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 역시 대학 생활을 정치적 억압에 고통 받고 자유를 갈구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0년 광주학살 이후 우연히 참여했던 한 가톨릭 청년모임에서 만난 동료 학생들과 노동자들, 수녀와 신부들의 절망과 고통, 간절한 소망이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어 대학원에서 반레닌주의적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로서 20세기 초 독일 공산당의 주요 이론가였던 카를 코르쉬Karl Korsch에 대해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1980년대 말 한 정치학도들의 모임에서 이 논문을 요약하여 발표했을 때 엄청나게 비판받았다. 이 비판은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하는 지적 자극이 되었다.
그는 박호성 교수 아래서 나이 든 '고고학적 박사 과정생'으로 사회주의의 개념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의 주요 관심은 사회주의 '위기'의 본질과 지적 연원을 사상사적으로 해명하는 데 있다.
그는 1960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여자가 정치외교학과에 가면 팔자가 험해진다며 국문과나 사학과를 가라는 부모님의 간곡한 말씀을 거역하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그가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유학하면서부터이다. 특히 1980년대 말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자 마르부르크 대학 정치학과의 휠베르트`Georg F?erth 교수는 정치경제학을 다시 독해해보자는 취지하에서 한편으로는 소위 부르주아 정통 정치경제학,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수업을 수년에 걸쳐 개설했다.
이에 참여하면서 휠베르트 교수의 지도를 받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의 금융자본에 대한 분석을 마르크스의 이론과 비교하여 박사 학위논문을 썼다. 그의 주요 관심은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치경제적 발전과 현상들을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틀을 통해서 설명해보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