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이란 무엇인가?
칸트는 이를 인간이 자신의 열등성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하면 권위에 맹족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에 과감하게 봉사하는 능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므로 계몽 정신이란 인간의 자유 의지로 성취되는 진보의 합리성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계몽주의자들은 지식의 진보와 이를 위한 판단과 비판의 자유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계몽주의의 상속자인 마르퀴 드 콩도르세는, 인간 정신의 진보는 교육과 정치적 수단에 의해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마땅히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인간은 지적·도덕적·신체적으로 무한히 완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진보의 이념과 이를 통한 인간 해방이라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 정신의 진보를 주장하는 콩도르세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진보란 무엇이며, 진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저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신심 깊은 홀어머니와 소박하게 생활했다. 유년시절 수학적 세계에 눈을 뜬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기병장교가 되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홀연 단신으로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튀르고와 달랑베르를 만나 자신의 수학적 재능과 신념을 인정받은 그는 달랑베르와 라 퐁텐의 후원으로 스물여섯의 나이에 왕립과학 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되고 종신 사무국장으로 활동한다. 그의 수학적 관심은 행정과 정치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학술원 행정은 물론이고 조폐국장으로서 정치에 입문하여 정책과 관련된 논문을 많이 발표하고, 프랑스 대혁명의 발발과 함께 혁명정치에 참여한다. 이후 국민공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교육개혁안과 헌법기획안을 제출한 그는, 이성이 관철되는 혁명을 모색하게 된다.
이러한 혁명적 이념에는 시대를 앞선 계몽의식이 기반하고 있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영원한 진보, 즉 인간은 무한히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볼테르와 달랑베르, 디드로를 계승하여 제2세대 계몽사상가로 활약하며 '계몽주의 엘리트 공화정'에 마지막 광채를 뿌렸다.
계몽사상가의 계보에서 마지막 세대인 콩도르세는 무엇보다 빈부와 인종을 넘어선 박애주의를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흑인노예 해방론, 노예 폐지론, 여성 평등이라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현실화되었다. 특히 여성 평등에 대한 그의 신념은 시대를 앞선 매우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당대에 가장 진보적인 사상가였던 그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루이 16세의 사형을 반대하게 되면서 로베스피에르와 대립하게 된다. 이후 공화국의 적이자 음모자로 내몰리게 되어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다. 친척 집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글로 남긴다. 8개월간의 도주 끝에 불심검문으로 체포된 지 이틀 후, 간직하고 있던 아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진보 정신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오귀스트 콩트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작으로는 《다수결 투표의 확률에서 해석학의 적용》, 《튀르고의 생애》, 《볼테르의 생애》 등이 있으며, 교육개혁과 관련된 기획안과 경제 정책 관련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역자-
그는 조용한 시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홀어머니께 효도할 작정으로 대구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취직공부는 하지 않고 낡아빠진 온갖 책들을 읽느라 주로 도서관에서 일상을 보냈다. 그때 읽은 책 가운데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것은 기이하게도 그 후의 인생 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몇 년간 방황하다 대학에 입학했다. 법학을 공부하여 출세하라는 주위의 권고와 기대를 배신하고 역사학을 선택했다. 역사가의 의무는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란 말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방위병 제대 후 인혁당 사건으로 초토화된 1970년대 후반 대구 영남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한다고 동분서주하던 시기는 개인적으로 낭만적 소영웅주의의 시기였다. 박정희의 죽음 이후 이제는 좋은 세상이 오리라 믿고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바로 그런 소박한 마음의 발로였다. 그러나 5월 광주는 한 역사학도에게도 끈질기게 지속될 고난의 짐을 부과했다.
문화운동과 사투, 학원민주화와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그는 삶에서 이론과 실천이란 무엇인가를 수없이 되물었다. 현장에서 좌절과 성취를 반복하면서 실천에 복무하는 학문만이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에 위안을 주는 학문의 역할도 수용하게 되었다. 또한 학문과 실천과의 관계에서 우회를 인정하고 현실을 여유 있게 보려는 모습도 생겨났다.
그리하여 다시 영남대학교로 돌아와 몽테스키외의 정치사상에 관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지금까지는 시민 사회에서 욕망의 역할과 도덕의 계보를 논한 맨드빌, 벌린의 두 가지 자유의 개념, 고대인의 자유와 근대인의 자유를 비교한 콩스탕의 자유주의, 루소의 사상에서 일반의지와 투표의 관계 그리고 자유론, 여기에서 소개하는 콩도르세의 수학적 사회과학 등에 관심을 갖고 그에 관한 논문들을 썼으며, 프랑스 역사가 세르토Michel de Certeau를 소개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