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전도활동으로 시작된 피아노 유입이
대구사회 전체의 서양음악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입니다
1900년 3월 26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사문진)에 도착한 피아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로 출발하여 일본을 경유해서 부산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부산항에 내려진 피아노는 부산 하구(현 사하구)에서 낙동강 짐배에 실려 몇 일간 걸려 사문진(화원유원지, 현 사문진주막촌)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피아노가 들어오는 이러한 과정은 1901년 5월에도 이어집니다. 한편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로가 정식으로 개통되기 때문에 당시 크고 무거운 피아노는 수로를 통해 옮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초로 유입된 피아노의 주인은 대구지역 제5대 선교사가 되는 사이드보담의 아내 에피 브라이스입니다. 선교사의 전도활동으로 시작된 피아노 유입이 대구사회 전체의 서양음악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음악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대구출신의 1세대 서양음악가들의‘ 음악가적 정신musicianship’을 이어받아 새로운 음악문화를 창조하고자 향토의‘ 정체 성identity’을 찾는 데 그 뿌리가 바로『사문진과 한국 첫 피아노』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