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조명되지 못했던 중도파 민족주의자
정이형과 같은 중도파 정치세력은 해방정국에서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활동했던 비중에 비하면 오랫동안 남에서나 북에서나 외면당했고 잊힌 존재나 다름없었다. 남북의 정치가 장기간에 걸쳐서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중도노선이 허용될 수 있는 정치 지형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냉전에 편승하여 남북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대화나 교류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도파의 민족자주노선이 설 자리가 없었다.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극좌·극우세력과 명백히 차이 나는 점은 민족국가 건설 문제에 있었다. 이승만은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고 있었고, 북한은 민주기지론을 제기하였다. 그에 비해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에게 분단은 엄청난 민족적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려면 좌우합작의 길밖에 없다고 보았다. 좌우합작은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 나라에 기울지 않고 우호관계를 가질 때 이루어질 수 있는데, 친미·친소의 길이야말로 민족자주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고, 이 점이 극좌·극우와 크게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