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이 없다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우주의 떠돌이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 우주에 우연은 하나도 없다.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 한재희.
삶의 전부였던 피아노가 무거운 형벌처럼 느껴졌을 때,
시지프의 휴식 같은 소녀 이나를 만나게 된다.
“방금 기절해서 내가 구조했어요. 다시 살아날 거예요.”
소녀는 손바닥 길이로 잘려 나간 아이비 줄기를 들고 있었다.
“내가 사랑을 자꾸 보낼 거니깐 분명히 생생하게 살아날 텐데…….
아저씨…… 순진이가 뿌리 내릴 때까지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왜 그런 얘길 하지?”
“아저씨는 어디론가 떠날 사람 같아서…….
순하게 잘 크라고 ‘순진이’예요. 아저씨도 순진이라고 불러 줘요. 예?”
별도 보이지 않는 도시의 사막에서
어떤 식으로 나이가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림의 중심엔 소녀가 있고
배경엔 항상 내가 있었다.
나는 소녀의 유일한 위성衛星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