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이 작품은 태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민중시인 순턴푸의 대표작이다. 형식은 전통적인 운문 형식이지만 내용은 종래의 집필 관습과는 다르다. 당시 서양과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항구 도시 방콕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흥 중산층의 기대에 부응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운문 중심의 고전 문학 시대(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현대 문학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태국 고전 서사 문학이 그렇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왕자이며,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왕족들이다. 게다가 모두 절세가인이며 출중한 미남들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우선 무대(공간적 배경)가 육지가 아닌 바다인 태국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과 또 여성들의 역할과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점이다. 빼어난 미모와 ‘삼종지도’라는 여성의 덕목을 벗어나서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어느 면에서는 남성보다 우월한 의식과 능력을 가진 능동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순턴푸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으로, 후세 여러 작가와 문인들에 의해 재편집, 재구성되어 읽힐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중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만화는 물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라영 등 태국 동남부 해안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바다에 우뚝 서 있는 여자 거인상(낭피스아)과 해변 언덕 위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잘생긴 남성(프라아파이마니), 그리고 그 주변 해변의 인어(낭응악)를 쉽게 볼 수 있다.
작품 제목 ‘프라아파이마니’는 다른 태국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남자 주인공의 신분이 왕자이므로 앞에 “프라”라는 단어가 붙었고 이름은 “아파이마니”다. 이 작품은 여러 판본이 있으나, 이번 번역에는 태국국립도서관본을 사용했다. 태국국립도서관본 ≪프라아파이마니≫는 태국 식으로 94권 64대목, 39만 2000단어로 구성된 작품으로, 순턴푸의 작품 중 가장 방대하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 당시 태국인의 바깥세상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신흥 중산층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초 태국인 지식인의 의식 변화도 같이 담았다. 왕은 신적인 지엄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인간이라는 인본적인 사고, 자신의 사랑과 능력에 대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비롯해 일부다처제와 요커(요가의 대가)의 주술이나 주문 같은 전통적인 문학적 장치, 풍문으로만 들었던 새로운 유럽의 지식, 여왕의 출현, 현대 항공모함 수준의 큰 배와 그 배의 선원이 지닌 신무기 등이 등장하며, 작중 인물들 간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작품을 이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