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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모던걸의 귀향
글쓴이
이선미 저
출판사
가하
출판일
2016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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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야로맨스
1. 작품 소개

“내가 놓아줄 때 날아가시오. 한시라도 지체하면 당신은 그 가느다란 발목에 족쇄를 차게 될 거요.”

시골마을 백학골에 들어온 신여성 캐서린 드레이크, 한국명 근영. 태어나자마자 미국에 입양된 근영은 제 뿌리를 찾아 이곳에 왔다. 그녀를 향한 눈은 동경과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으나 꼭 하나 툭툭대는 이가 있으니, 그녀가 머무는 심 참봉 댁 큰아들 규용.
처음에는 나긋나긋 여성의 장점으로 그를 계몽하겠다 마음먹었던 근영은, 장대한 덩치에 퉁명스럽고 으스대는 그의 안에 있는 따뜻함에 끌리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데…….

“내가 예쁘다고 했지 않아요? 내가 좋다고 했지 않아요?”
“나는 사랑한다고 생각하오. 당신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오. 당신과 혼례를 올리고 아이를 낳아 오순도순 살고 싶소.”
“규용 씨…….”
“당신이 욕심나오. 내 방에 가두어두고서 나만 보고 나만 어루만지게 하면 좋겠소.”

2. 작가 소개

이선미

1971년 대구 출생.
성숙한 사람들의 사랑, 철부지들의 사랑, 자기애, 집착 등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그리고 싶어 하는 작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담아내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고.

▣ 출간작

아라사의 서우여
석빙화
광란의 귀공자
10일간의 계약
커피프린스 1호점
하록과 배태랑
달의 시 外

3. 미리 보기

약속시간보다 일찍 읍내에 도착한 규용은 먼저 근영을 데리고 사진관에 들렀다. 그런데 근영이 가지고 온 필름은 인화할 수 없다고 하여서 최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필름을 동봉하여 서울에 부쳤다. 우편국에서 나온 규용은 다시 근영을 데리고 약속장소인 찻집을 향하여 갔다.
처음에 규용은 근영은 구경하도록 두고 나중에 만나자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근영이 정신을 빼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데다 전방(廛房)을 지키고 앉은 상인들이며 장을 보러 나온 사내들이 근영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힐끔거리는 꼴을 보고서는 도저히 혼자 놔둘 수가 없었다. 근영을 대동하여 읍내에 들어섰을 때 규용은 뭇사람들의 부러움 넘치는 찬탄을 느끼고 미인을 동반한 것에 자랑스러움이 없지 않았는데 시간이 차차 흐르고 보니 근영을 쳐다보는 집요하고 탐욕스런 사내들의 눈길이 사뭇 불쾌하고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저기, 저기 서 있는 게 뭐지요?”
“가래요.”
“가래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요?”
“침 밭을 때 쓰오.”
“네에……. 그러면 저기 앉은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건 뭐지요?”
“묵사발이오.”
“예에? 그러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주셔요. 묵사발이라니, 내가 그 말뜻을 모를 줄 알아요?”
“허허, 허허허…….”
규용은 그저 웃음밖에 아니 났다. 모른다고 엉뚱하게 가르쳐준 것은 가래지 묵사발이 아니다. 흙 뜨는 가래는 침 밭을 때 쓴다 하여도 아무 말 않더니 진짜 묵사발을 묵사발이라 했다고 삐친 얼굴을 하니 어찌 웃지 않을쏘냐.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규용은 다시 시작되는 근영의 질문공세에 한숨을 쉬며 머리를 내저었다.
읍내는 장날은 아니었지만 매일 여는 전방들이 있으니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제법 북적거렸다. 거기에다 기모노를 입고 화장한 여인들이 달그락달그락 게다 소리를 내며 지나치고 넓은 도로에는 자전거가 딸딸딸 지나고 달구지도 덜컹덜컹 지나고 가끔은 빠앙빠앙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도 지나서 여간 정신 사나운 것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도 나들이 나온 아이처럼 흥분한 근영은 규용의 앞뒤로 종횡무진하였다. 어느 순간 규용이 돌아보면 한참 뒤 포목점에 붙어 있고, 옆에 붙었거니 하면 어느새 또 보이지 않아 휘휘 눈을 비비고 찾아보면 어물전에 쪼그려 앉아 주인을 붙잡고 쫑알쫑알 물어대고 있으니 규용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묶읍시다.”
“예?”
규용은 자전거 뒤에 있는 노끈을 풀어 근영에게 들이밀었다.
“그래야 내가 살겠소.”
“예에?”
깜짝 놀란 근영이 몸을 빼려 하였지만 규용의 손놀림이 더 빨랐다. 규용은 재빨리 팔을 돌려 순식간에 근영의 허리에 끈을 묶었다. 그리고 그 한쪽 끝을 잡고서 만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됐군. 자, 갑시다.”
“이보셔요! 나를 개처럼 끌고 가겠단 말이어요?”
얼굴이 새빨개진 근영은 화를 내며 허리에 묶인 끈을 풀었다. 그때에 이미 근영은 읍내에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터라 그 모습을 본 행인들의 웃음이 메아리처럼 울려서 근영의 귀에까지 닿았다.
“너무 나빠요! 사람을 이리 놀리다니!”
“입 다물고 있으시오. 아니면 저기 기둥에 묶어버릴 참이니까.”
“뭐여요! 아니 대체 왜…….”
“눈이 있거든 둘러보시지요, 아씨. 내가 한눈이라도 팔면 저 구경꾼 중에 한 놈이 잽싸게 달려와 수작을 걸 판인데 사리분간도 못하고 앞뒤로 알짱알짱 쏘다니니 내 정신이 온전하겠소? 정신이 하도 사나워져서 눈 감고도 가던 길을 물어 갈 형편이오. 그러니 어쩌겠소? 이렇게 해서라도 얌전히 따라오겠소, 아니면 예서 기다리고 있을 테요?”
키득키득 웃던 사람들은 아예 두 사람을 에워싸듯 다가와서는 “옳거니!” 하고 감탄을 하는가 하면 “예 두고 가시오!” 하고 참견을 하였다. 읍내에 나와 이렇게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이 처음인 규용은 무안하기도 하고 근영에게 농지거리를 하려 드는 사내들의 음흉한 눈빛에 성이 나기도 해서 근영을 잡아 다그쳤다.
“갑자기 벙어리라도 되었소?”
“얌전히 따라가겠어요.”
근영은 샐쭉한 표정에 원망을 담은 눈으로 규용을 흘겨보며 덧붙였다.
“그래도 이 끈은 너무 나빠요.”
“좋소. 그럼 이쪽 손잡이를 잡으시오.”
규용은 자전거 뒷자리에 원래대로 끈을 묶은 뒤 근영에게 자전거의 한쪽 손잡이를 맡겼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자전거를 사이에 두고서야 순조롭게 목적지를 향할 수 있었다. 볼거리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 사람들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고 급기야 어떤 이는 거리를 두고 졸졸 따라오기까지 하였다.
찻집에 도착하였을 때 규용의 심사는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걷는 근영을 보노라니 저의 행동이 심하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사실은 근영을 넓은 읍내 바닥에서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마는 묶어두니 마니 하였던 것은 근영에게 모욕감이 되었으리라.
“어서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선 찻집에는 청년이나 노인이나 모두 남자뿐이어서 근영의 등장은 대단한 주목받았다.
“무얼 드시겠어요?”
“나는 조금 이따 손님이 또 오면 주문을 하겠소.”
“그럼 아가씨는?”
“홍차 주셔요.”
종업원이 간 뒤에도 근영은 창밖을 보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규용은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또 그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계면쩍고 어색해서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괜스레 없는 먼지를 털고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는 시늉을 하며 근영의 얼굴을 피하였다. 그때, 창으로 비쳐드는 가는 햇빛에 비친 근영의 옆얼굴이 규용의 눈을 사로잡았다. 햇살로 피어오르는 하얀 피부는 꽃잎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고 생동감 있다. 규용은 하려던 말도, 침묵의 어색함도 잊은 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코가 빨갛군.”
규용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근영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규용은 종업원이 놓고 간 엽차를 근영 앞으로 바짝 밀어놓으며,
“뜨뜻한 아랫목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을 것이지…….”
하였다. 근영은 잔 위로 하얗게 피어나는 김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뻗어 잔을 매만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읊조리듯 물었다.
“왜 그랬어요?”
“무슨 말이오?”
“사람들 많이 앞에서 창피 주었지 않아요?”
규용은 머뭇거렸다. 찻잔을 향해 눈을 내리깔고 있는 근영은 침울해 보였다. 지난번처럼 화를 내며 따져들 줄 알았는데 밝고 화사한 얼굴에 우울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껏 보아온 바로는 명랑하다 못해 맹랑한 근영이었기에 그런 일로 상처를 받으리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화가 났으면 화를 낼 것이지 어째서 저리 풀 죽은 꼴을 하고 앉았을꼬.
“나는 규용 씨가 마음 따듯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덕희에게도 마을 사람에게도 다정하고 많이 웃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는 나쁘게 말하고 무서운 얼굴 하지요?”
근영은 호소하듯 말하며 찻잔에서 눈을 들었다. 근영의 직설적인 화법은 규용에겐 선전포고 같았다. 규용은 당황해서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였다. 태어나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입 밖으로, 그것도 상대를 코앞에 두고 얘기하는 사람은 대하는 건 처음이다.
‘이것이 양인의 사고방식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두려움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으니 얼마나 자신만만하단 소린가.’
규용은 원망 담긴 말을 들으며 난처해 있다가 문득 근영의 시선과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마주친 그 순간 재빨리 피하려던 규용은 근영의 눈에 어린 그 무엇에 잡아끌리어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았다. 그 영롱한 눈동자가 안타까이 흔들리는 걸 본 순간 마치 자신이 여자를 농락하다 버린 아주 몹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내게 잘못 있으면 말해요.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야 고칠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규용 씨에게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계속 생각해보고 있지만……. 그때의 실수 외에는 떠오르지 않아요. 그 실수가 나를 아주 나쁘고 음탕한 여자로 보이게 만들었다면…….”
근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자 규용은 자책감이 일어 무릎 위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찌하여 제가 근영을 그리 대하였는지 자신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처음 본 순간부터 밉고 싫고 거부감이 생겨 눈앞에서 머릿속에서 몰아내고만 싶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규용 씨가 알아준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묶으시오.”
“네?”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근영의 눈이 커졌다. 규용은 그 눈을 피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 화가 풀린다면 나를 때려도 좋소.”
“그 말은……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반성하고 있소. 내가 지나쳤소.”
“아…… 사과하는 거예요?”
“그래요. 사과하는 거요.”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어요. 왜 그랬어요?”
차마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깜박 한눈팔면 당신이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웠노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왠지 누가 뛰어와 홱 채어갈까 봐 불안하였노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콕 막힐 노릇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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