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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율곡 이이 직간
글쓴이
율곡 이이 저
출판사
홍익출판사
출판일
2016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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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율곡 이이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책 소개

분야한국/동양철학
열혈 개혁가 이율곡이 선조 임금에게 목숨 걸고 올린 상소문
[동호문답]과 [만언봉사]에서 혼돈의 시대를 이기는 지혜를 찾는다

혼돈의 시대를 고뇌하는 학자의 지혜가 담긴 최고의 인문서

조선의 위대한 학자 율곡 이이(1536~1583)가 살았던 16세기 중후반은 조선 창업 200년에 가까워지던 때로, 무능한 왕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하는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나라의 암담한 미래와 백성들의 고통을 목도한 이율곡은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임금에게 직언을 멈추지 않는 열혈 개혁가이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상소문 [동호문답]과 [만언봉사]는 그가 목숨을 걸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상소문 중에서도 가장 깊은 성찰이 담긴 ‘율곡 정치개혁론’의 핵심이다. 이 책은 또한 조선시대의 사회, 문학, 교육, 철학, 정치가 한데 녹아들어 있어 시대를 고뇌하는 학자의 지혜가 담긴 최고의 인문서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율곡의 정치 개혁론에서 오늘의 나아갈 길을 찾는다!

율곡의 시대는 이미 네 차례의 사화로 인해 올곧은 선비들의 명맥이 거의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강직한 직언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백성을 위한 정치 개혁을 주장했다. 이 두 저술은 한마디로 ‘자기수양을 통해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고, 제도를 개혁하여 폐습을 고치는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임금이라는 명확한 독자를 두고 간절하게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마치 율곡을 마주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듯 생생하다.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한 구세력들로 인해 그의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의 사후 10년 만에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재앙에 휩쓸리고 만다. 부패하고 안일한 관료로 인해 나라가 파국으로 치닫는 16세기 조선의 모습은 21세기 오늘의 대한민국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왜란 직전의 조선처럼 혼란스러운 지금, 율곡 이이의 [직간]에서 우리의 나아갈 바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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