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년대 한국인의 초상
이 책에 수록된 80여 컷의 사진들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약 오 년에 걸쳐 촬영된 것이다. 당시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사진집 『미국인(The Americans)』을 접한 그는, 사진이 담아내는 보편적 진실의 힘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 또렷해짐을 깨닫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이 시대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포착하기로 한다. 그는 팔십년대 중반 이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주변의 현실들을 보도하거나 증언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고자 했다. 작가는 젊은 날 고향을 떠나 서울과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회적 약자와 빈곤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럴수록 이 땅의 현실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자유를 느끼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땅이 아니라,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남들의 나라, ‘타인의 땅’으로 보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팔십년대 한국사회를 살아간 대다수 한국인들은 ‘타인의 땅’에서 살았다는 뜻일 것이다.
팔십년대가 어떤 시대였던가. 10.26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군사통치 시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러자 전국에서 군사독재와 통치를 반대하는 저항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신군부 세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피로 진압하며, 끝난 줄 알았던 독재정권을 되돌려 놓게 된다. 이로써 시민들이 원하던 ‘더 나은 미래’는 계속 유예됐다. 서울아시안게임(1986)과 서울올림픽(1988)과 같은 국제 행사를 준비하며 분위기는 들떴지만 탈을 쓴 호돌이의 발걸음은 힘이 빠지고(90-91쪽), 골목을 걷는 소녀의 등 뒤로 섬뜩한 총부리가 느껴졌다.(108-109쪽) 컬러텔레비전의 보급과 해외여행의 자유화, 레저시대를 즐기는 사람들 등 거리 곳곳에는 활기와 여유가 넘치는 듯 보였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뭔가 어색하고 거북했다. 사진가 이갑철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어디선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을, 프레임 밖으로 잘려 나간 머리나 뒷모습, 역광으로 찍혀 보일 듯 말 듯한 어두운 얼굴 등으로 표현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