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여자가 되고, 나무 인형이 소년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마분지를 접어 만든 다리, 신문지를 돌돌 말아 만든 팔뚝. 그렇게 종이 조각들로 만들어진 여자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멕시코 이민자로 미국에서 성장한 살바도르 플라센시아의 데뷔작, 『종이로 만든 사람들』은 책을 웬만큼 읽었다는 독자들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기발하고 엉뚱한 소설이다. 주인공 페데리코 데 라 페는 야뇨증 때문에 밤마다 침대에 오줌을 싼다. 남편의 야뇨증을 참다 못한 아내는 급기야 집을 나가버리고, 슬픔에 빠진 페데리코는 실연의 고통과 야뇨증을 치유하기 위해 어린 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그들이 정착한 ‘엘몬테’라는 곳은 일명 ‘꽃마을’로, 마을 주민 모두가 카네이션과 장미 따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페데리코는 그곳에서 딸은 학교에 보내고 자신은 꽃을 따면서 열심히 살고자 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페데리코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늘에 떠있는 토성. 토성이 마을 사람들을 감시하고,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며, 심지어 그들의 삶에 개입해 자유의지를 앗아가고 있던 것. 사람들이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엘몬테는 토성의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성에 맞서는 항쟁을 결의한다.
이야기는 엘몬테의 배신자인 스마일리로 인해 토성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제대로’ 흥미진진해진다. 스마일리는 토성에 대항한 전쟁에 회의를 품고, 자신의 창조자인 토성을 만나기 위해 종이로 된 세계의 하늘을 뜯어내고 토성의 방으로 들어간다. 종이를 뜯어내고 토성의 방으로 들어간다고? 그렇다. 토성의 정체는 바로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자신이다.
소설은 세 개의 세계를 오간다. 꽃마을 엘몬테 사람들의 세계,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세계, 그리고 소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읽고 있는 독자의 세계. 작가는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형태적 변화를 통해 소설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생동하게 한다. 마치 종이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듯이.
작가 자신도 속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의 생각은 아예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어떤 글자는 도려 내어져 종이에 구멍이 뚫려 있기까지 하다. 그 어떤 소설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독창적인 책. 입체적인 편집과 그보다 더 입체적인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살아 움직이는 종이 모서리에 손이라도 베일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그 종이 위에 쓰인 이야기! 두렵고, 기발하고, 매혹적인 3차원 소설의 등장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