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명이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중세 유럽을 휩쓴 대재앙이었던 흑사병. 『쌀과 소금의 시대』는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아닌 99퍼센트가 목숨을 잃고, 중국과 이슬람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다는 가정 아래 씌어진 ‘대체역사소설(alternate history novel)’이다.
역사적 지식은 물론이고 철학, 신학, 과학, 동양 문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서기 14세기부터 21세기까지 7세기에 걸친 가상의 세계사를 실제 역사보다도 더 정교하게 그려낸 솜씨는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SF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킴 스탠리 로빈슨의 명성을 확인하게 해준다. 『쌀과 소금의 시대』는 ‘화성 삼부작’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자의 작품 중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으로, 2003년 전세계 독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로커스상을 수상했으며 휴고상 후보에 올랐다.
분노로 가득 찬 흑인 노예 소년, 교조적인 이슬람이 아닌 『코란』의 진정한 뜻을 현실 속에 실현하고자 하는 수피, 만물에 존재하는 법칙을 탐구하는 연금술사, 중국의 선구적인 페미니스트, 부유한 하렘에서 달아나 자유를 찾는 소녀……. 윤회의 바퀴에 한데 얽힌 주인공들은 언제나 불완전한 채로 삶을 끝맺는다. 하지만 다음 생에 태어나서도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업(業)’처럼 이들의 운명을 이끄는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희망은, 역사란 언제나, 일용할 한 줌의 쌀과 소금을 위해 온전히 한 생을 바치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 의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것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