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와봐서 알겠지만 먹을 거 빼곤 다 있어. 너만 오면 돼.”
실력도 외모도 되지만 올곧은 성격으로 인해 7년째 무명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황유라에게, 한류스타에다 만인의 연인인 강승현이 다가온다. 도대체 저의 뭘 보고? 믿을 수 없는 이 상황과 과거의 상처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그녀를, 심지어 승현은 기다려주겠다고까지 한다.
저를 배우로서나 여자로서나 지지해주는 그에게 유라는 점점 빠져들기 시작하지만 톱스타와 무명배우의 차이는 크기만 한데…….
“……사랑해.”
“음……. 난…….”
그러고도 시간이 가도록 그가 기다리는 말은 해주지 않는 유라였다.
“아낄래.”
“뭐?”
“아끼고 아꼈다가 나중에 해줄게요.”
“됐어, 너 오늘 죽을 줄 알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구진 미소를 띠며 강하게 허리를 밀어붙이자 유라가 놓았던 시트를 다시금 꽉 움켜쥐었다.
2. 작가 소개
채은
로망띠끄 - 로맨틱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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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작
제국의 연인
제비꽃에 앉은 나비
am7시, 특별한 허락
낮에 뜨는 별
3. 미리 보기
생애 첫 팬 사인회라니. 오늘 이 역사적인 날을 맞아 숍에 들러 예쁘게 꽃단장을 하고 있던 유라가 이야기를 듣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날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내어 와주신 분들인데, 삼백 장 아니라 천 장도 더 해드릴 수 있다며.
헌데 말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바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 회사 측에서 내어준 하얀 밴을 타고 M플라자 근방에 도착해 인근에 가득가득 모여 있는 수천의 팬들을 보고서야, 실제로 천 단위의 머릿수에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느낀 유라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쯤이야 이제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을 보내었다지만, 이렇게 저 하나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인지라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놀라버렸다. 동시에 난데없이 서러웠던 지난 무명생활이 스쳐 울컥하기도 하고, 너무 벅차 감동스럽기도 하고, 무척 설레기도 해서 기분 좋은 엄살도 피웠다.
“나 오늘 팔 떨어지면 어쩌지?”
대기실에 도착해서도 도저히 부푼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아 잠시도 앉아 있질 못했다. 넓지 않은 대기실 구석구석을 왔다 갔다 하며 심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을 때에, 승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유라의 목소리가 기분을 숨기지 못하고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아, 선배. 나 지금 토 나올 것 같아요!”
전화 건너편의 승현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곤 놀라 물었다.
- 왜? 속 안 좋아?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 기분이 말로 표현이 안 돼, 아우 정말 토할 것처럼 미식거리기도 하고, 목구멍도 간질간질하고…… 아무튼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겠어요.”
- 긴장해서 그런 거 아냐?
“그런 거 같아요.”
- 거봐. 긴장할 거라니까.
어젯밤 통화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다는 유라의 말에 승현이 그런 말을 했었다. 내일 그 장소에 막상 도착하고 나면 무지 긴장될 거라고. 그래도 잠들기 전까지 유라는 생각했었다. 난 안 그럴 것 같은데. 헌데 그 생각이 보기 좋게 무색해졌다.
“그러게 정말 무진장 긴장되네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와서 번호표도 추가한 거 있죠?”
- 와, 좋겠네.
“아웅, 좋긴 좋은데 너무 떨려서. 후……, 후. 계속 심호흡 중이에요. 선밴 어디예요?”
- 숍. 보타이가 끊어져서 교체하고 다시 피팅 중이야.
오늘 밤, ‘가시 뽑힌 장미’의 방영 방송국의 연기대상 시상식이 있을 예정이다. 거기에 입고 갈 슈트에 작은 문제가 생겨 승현은 지금 협찬 숍에 들러 있었다. 유라의 드레스도 그곳에서 협찬을 받아둔 상태라 승현은 유라가 오늘 입을 드레스를 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 너 근데 이거, 너무 야한 거 아냐?
“내 드레스 봤어요? 완전 예쁘죠?”
- 완전 야하다고. 다른 거 입어.
“왜애. 나 그거 너무 맘에 들어서 첨 보자마자 딱 찜한 건데. 그리고 그거 별로 야하지 않아요. 앞이 꽉꽉 막혀서.”
- 등이 다 파였잖아.
유라의 드레스는 앞만 봐서는 매우 수수하나, 뒤돌았다 하면 코피 터진다는 그 유명한 반전드레스였다.
“앞이 파인 것보단 낫잖아요. 아예 트렌치코트를 입을까?”
- 그거 괜찮네.
“으이그, 끊어요. 나 메이크업 다듬어야 해.”
미나의 손짓에 거울 앞에 앉은 유라는 생애 첫 팬 사인회에 잔뜩 상기되어 있는 제 얼굴을 톡톡 두드려 가라앉히며 그와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이따 봐요. 사람들 많아서 아는 척은 못하겠지만.”
- 그래. 사인회 잘해.
“응, 알았어요.”
당초 1층 홀에 마련되어 있던 작은 무대가 야외광장으로 옮겨졌다. 예상보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내부의 혼잡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탓에 사인회를 야외에서 치르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예정보다 삼십 분가량 늦어진 팬 사인회가 초저녁, 밝은 조명 아래 드디어 시작이 되었다.
먼저 무대에 올라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유라는 테이블을 덮고 바닥까지 내려온 천 안에서 바들바들 두 다리를 떨고 있었다. 무대에 올라오니 긴장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그래도 표정은 매우 여유로운 척, 아주 그럴싸하게 예쁘게도 웃고 있었다.
“자, 그럼 황유라 씨 팬 사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질서 꼭 지켜서 한 분씩 무대로 올라와주시기 바랄게요.”
사회자의 멘트가 지나고, 무대 아래를 지키고 선 경호원에게 번호표 확인을 거쳐 홍조를 띠며 후다닥 올라온 한 십 대 여학생을 시작으로, 유라 인생의 첫 사인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닌 척하려 해도 얼마나 떨리던지, 처음 한 서른 명까지는 너무 떨려 지난밤 그다지도 연습했던 사인이 못나게도 삐뚤어졌다. 그래도 그나마 그 이후부터는 굳었던 팔도 점차 풀리고 떨리던 다리도 자유자재로 꼬았다가 풀었다가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사인을 받기 위해 내보이는 것들도 갖가지였다. 유라의 사진은 기본이요, 입고 온 티셔츠, 손바닥, 휴대전화 뒷부분, 상의를 들어 맨 등을 들이대기까지. 웃을 일이 많아 시간이 갈수록 조금 남은 긴장도 완전히 풀어졌지만 이제 다른 문제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아…… 정말 팔 떨어질 것 같아.”
잠시 쉬어가는 타임, 사회자의 토크가 이어지는 동안 생수로 목을 축인 유라가 진경에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정말 장난이 아니고 팔이 떨어질 것 같았다.
“얼마나 남았어?”
“반 정도 했어.”
“헤엑, 아직도 반이나 남은 거야? 어우, 나 근육 생기는 거 아냐?”
“행복한 비명이시네요.”
“그렇지? 그래, 행복이야 행복.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팬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테이블 아래에서 후딱 팔을 주무른 유라가 다시금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밝게 웃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어림도 없었을 이 같은 넘치는 사랑 앞에 감히 엄살을 피울 순 없다.
야외에서 진행이 되다 보니 구경 나온 인파들까지, 그 일대는 삽시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처음 정해졌던 인원에서 1.5배를 늘린 탓에 예상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가며 진경의 마음이 바빠졌다. 일 초가 멀다 하고 자꾸만 손목시계로 향하는 눈길을 말릴 수가 없다.
“아, 이거 아슬아슬하겠는데.”
곧장 숍으로 달려가 드레스를 갈아입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매만지고 시상식장으로 가려면 이제 슬슬 촉박해질 선상에 가까워질 시각이었다.
남은 인원은 쉰 명 남짓. 사회자에게 조금만 더 빨리 진행을 부탁한다는 사인을 넣어두고 유라에게 건네었던 팬들의 선물 따위를 챙기던 진경이 바지 포켓을 흔드는 진동을 느끼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 광수 씨. 나 지금 좀 바쁜데. ……한 쉰 명쯤 남은 거 같아, 왜? ……뭐? 그게 정말이야? ……아, 알았어, 알았어. 이, 일단 끊어!”
전화를 끊은 후, 진경은 그렇잖아도 아까운 시간을 일이 분이 지나도록 멍하게 허공을 보고 있느라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다.
“윤 실장님. 진경 언니!”
“어? 어어!”
함께 선물을 챙기던 미나가 진경의 팔을 흔들어대고서야 정신을 깨운 진경이 안절부절 정신없이 팔다리를 놀렸다.
“가, 가, 가만 가만! 내가 뭐, 뭐, 뭘 해야,”
“언니 왜 그래요?”
“어? 아, 아니 아니야. 잠깐만 생각 좀, 아니 생각할 시간이 없는데.”
도대체 진경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미나는 그저 갸우뚱하며 열심히 선물을 챙길 뿐이다. 후로도 미나의 시야 앞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던 진경은 어느 순간 전력을 다해 경호팀에게로 뛰었다.
마지막 한 장의 사인은 엄마의 품에 안겨 함께 올라왔던 여섯 살 꼬마 신사의 차지였다. 고사리 같은 손이 주머니에서 아끼는 막대사탕을 꺼내 건네주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지금껏 사인하느라 부러질 것 같았던 팔의 통증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한 장의 사인을 모두 끝내셨네요. 황유라 씨, 수고하셨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한말씀 해주셔야지요?”
사회자가 유라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유라는 사인하느라 절로 떨리는 팔을 테이블에 붙이고서 두 손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네, 아…… 사실은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대기실에서 굉장히 긴장했었거든요. 무대 올라와서도 너무 떨리고 긴장이 돼서 처음 몇 분들께는 사인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추운 날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주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텐데도 불평 없이 웃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하나같이 밝게 웃으며 유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돌아보며 능숙하게 소감을 전하고 마지막 인사만을 남겨두었던, 바로 그때였다.
“오늘 와주셔서 또 한 번 감사드리고요,”
멀지 않은 도로가에서부터 시작된 웅성거림이 점차로 퍼져 무대 근처까지 전해지자, 영문 모를 소란에 하나둘 사람들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처음 자그마한 소음이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상기류를 느끼고 넌지시 도로가를 흘깃거렸던 유라도 맨 앞자리에 서서 저를 올려다보고 있던 팬의 고개까지 뒤로 넘어갔을 때야 비로소, 말을 멈추고 웅성임의 씨앗을 찾아 온전히 도로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제 사인회도 끝나가는데, 무대의 앞뒤로 서 있어야 할 경호원들이 웬일인지 죄다 도로로 뛰어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길을 내고 있다.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 유라가 사태파악을 위해 무대 주변을 돌아보며 진경을 찾아 눈동자를 굴리고 있던 그때. 유라의 귓가에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던 자그마한 웅성거림 속에 하나둘 함성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마침맞게 무대 아래에 있다가 유라와 눈이 마주친 미나가 굉장히 들뜬 얼굴로 팔딱팔딱 뛰며 도로가를 향해 손짓을 했다. 저쪽을 한번 보라며.
어느새 수족이 빠른 경호원들에 의해 길 하나가 생겨났다. 바닷길마냥 조금씩 생겨나는 길이 바로 무대 앞까지 다다르기 직전, 그 끝의 도로가에 한눈에 보아도 굉장히 고가임을 알 수 있는 웬 까만 외제차 한 대가 부드럽게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섰다.
유라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은 잠시 잊고 ‘저 차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어디였지?’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렇잖아도 커다란 그녀의 눈이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래진 걸 보면, 기억해낸 모양이다. 승현의 빌라 개인 주차장에서 보았다는 것을.
“설……마…….”
갑자기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이 유라의 입 밖으로 뚝뚝 한 글자씩을 떼어놓았다. 그 ‘설마’의 마침표가 채 찍히기도 전, 까만 외제차의 운전석에서 내려서서 범퍼를 돌아 길 위로 지체 없이 발을 내딛는 그의 모습이 이미 커져 있는 유라의 눈동자에 가득, 아주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을 때는, 끊기는 말조차 나오질 못하고 금붕어마냥 끔벅끔벅 붉은 입술이 소리 없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잔잔하게 끊이지 않았던 웅성거림은 운전석 문이 열리고 그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자마자 그가 이곳에 나타난 영문도 모른 채 이미 엄청난 함성으로 변해버렸지만, 유라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어오지 못했다. 이 엄청난 함성 속에서도 뚜벅뚜벅 제게로 걸어오는 그의 발소리만이 아주 커다랗게 들릴 뿐.
‘말도 안 돼…….’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찰 공간이 없을 만큼 완전히 벙벙해져버렸다. 선글라스 아래에 하얀 치아가 드러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지금 유라에겐 꿈도 현실도 아니었다. 대체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청난 인파들의 하나같은 함성을 뚫고 결국 무대까지 올라와버린 그는 여전한 미소를 띤 채 유라의 앞에 멈춰 섰다. 웬만한 옷걸이가 아니고서는 소화하기 힘들다는 새하얀 슈트 속에 짙은 남색의 조끼와 보타이를 맨 그가 시상식장이 아닌 왜 엉뚱한 이곳,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일까. 유라는 뻣뻣해진 고개를 겨우 움직여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까만 선글라스에 완전히 얼어붙은 제 얼굴이 비추었다.
“어, 어, 어떻게…… 여, 여기…….”
얼굴빛이 창백해질 정도로 놀라 굳어 있는 그녀에게 승현이 더욱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인 받으러 왔습니다. 황유라 씨 열렬한 팬이라.”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던 터라 테이블의 마이크가 켜진 상태였다. 그의 입이 열리고 스피커를 통해 승현의 목소리가 크지 않을 만큼 근방에 울리자, 숨을 죽이고 주시하던 인파들이 또 한 번 함성을 내질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둘이 뭐 있는 거냐며 여기저기서 난리들도 아니다. 하나 그 난리통은 지금 유라의 신경을 조금도 잡지 못했다. 여전히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 사인……이요?”
사태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얼떨떨해 있는 유라에게 승현이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테이블에 놓았다. 종이는 볼 생각도 않고 목이 완전히 굳어버렸는지 제 얼굴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유라에게 승현이 종이를 눈짓하며 말했다.
“사인, 안 해줄 겁니까?”
“아, 아, 사, 사인해, 해드려야죠.”
정신은 못 차렸지만 이것이 상황극이라면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뼈 소리가 나도록 굳어 있던 목을 겨우 숙여 승현이 올려둔 종이로 시선을 내린 유라는 그만, 쥐고 있던 펜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 이건……!’
유라의 놀란 눈이 상단에 적힌 글자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몇 번이고 눈을 깜박여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또 보고, 또 보고, 또 몇 번을 보아도 이것은…….
승현이 유라가 놓쳐버린 펜을 집고 다시 유라의 손에 쥐여주고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어쩐 일인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승현은 선글라스를 벗어 붉어진 그녀의 눈시울을 온전히 마주 보았다.
“와봐서 알겠지만 먹을 거 빼곤 다 있어.”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코끝이 찡해서, 그냥 갑자기 눈두덩이 너무너무 뜨거워져서, 정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유라의 눈 가득 차올랐던 눈물이 뽀얀 볼 위로 넘쳐흘러 투명한 눈물길을 내었다.
그가 따뜻한 손끝으로 유라의 눈물길을 닦아내며, 보다 더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만 오면 돼.”
유라의 손바닥 아래 놓인 혼인신고서가 불어온 밤바람에 팔랑였다.
“같이 살자.”
그의 등 뒤로 까무러치는 수천 개의 함성이 캄캄한 밤하늘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