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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물의 자흔을 쫓는다(완전판) 1
글쓴이
신여리 저
출판사
가하 에픽
출판일
2016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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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미지

신여리

“무더운 7월에 태어나서인지 겨울을 싫어합니다.
몹시 게으르지만 글쓰기만큼은 부지런히,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출간작 『물의 자흔을 쫓는다』, 『바라연』, 『수라화』, 『가시나무 우는 성』, 『마리포사』

책 소개

분야로맨스
1. 작품 소개

나는 제르 시나와 엘 제이하이 카르시탄.
누이사 왕의 질녀이자 제이하이의 혈통을 지닌 카르시탄이다.

제르 시나와.
데바람의 총비였다는 신분을 숨기고 원수국으로 도망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냉혹한 땅의 영주가 된 그녀의 앞에 놓인 끊이지 않는 불신, 거듭된 절망
그리고 잘라낼 수 없는 인연.
상처를 온몸에 휘감은 채 살아남은 그녀의 새로운 삶이, 역사가 시작된다!

창가에 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충직한 기사는 무수한 말들을 삼켰다.
“……경은 아마 모를 거다.”
“…….”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여인이 유일하게 남은 한 가지에 얼마나 집착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면,그대도 아마 놀랄 테지.”
죽은 가을의 낙엽처럼 메마른 자조. 화려한 옷감 대신 누추한 망토를 선택한 그녀의 초라함이 그려지는 듯한
“참으로…… 긴, 겨울이구나.”
그런 목소리였다.

2. 작가 소개

신여리

은위, 돌시아니 등의 필명으로 웹소설 작가 활동 중.
누군가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그러나 게으른 아가씨.
무더운 7월의 첫째날 태어난 게자리.

blog▶http://blog.naver.com/shinyeori
e-mail▶shinyeori@naver.com
kakaotalk▶shinyeori

▣ 출간작

물의 자흔을 쫓는다(구)
수라화
가시나무 우는 성 1부
바라연

▣ 출간 예정작

마리포사 mariposa
이매魑魅
미사

3. 미리 보기

[친애하는 카르시타의 전하께 올립니다. 지난 11월 초 당신의 은혜를 입은 데바라네, 조모의 이름 ‘피르 오들뢰앙 엘 엘카다 카르시탄’을 빌어 ‘제르 시나와 엘 네들리타 데바라네’의 이름으로 감히 당신의 아이를 가졌음을, 그것을 이유로 망명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카르시타의 다섯 공작들은 누군지 모를 여자의 이름 끝에 붙은 ‘데바라네’에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가 ‘당신의 아이를 가졌음을’이라는 대목에서 “억!” 하는 숨넘어가는 소릴 냈다.
그러나 그들은 혼란에 빠지는 대신 제각각 머릿속으로 가진 일련의 정보를 늘어놓느라 정신없었다.
지난 11월 초라면 정확히 유스카리의 데바람행 날짜와 맞물렸다.
유스카리는 데바람과의 지난 1년간 조금 더 지속된 전쟁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화친을 명목으로 데바람을 방문했다. 말이야 친교지, 데바람에 찾아가 이거 내놔, 저거 내놔, 하고 행패를 부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기는 일단 둘째치고.’
데바라네? 모두의 머릿속은 ‘데바라네와 아이’ 그 두 가지에 몰입되어 있었다. 뒤에 붙은 데바라네라 함은 분명 데바람 왕가의 여성을 상징하는 왕실의 성일 것이다. 하지만 데바람에는 공주가 없다.
그렇다면 ‘데바라네’는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을 더욱 긴장하게 하는 것은 왕의 긍정이었다.
“공들이 생각하는 게 맞다.”
쥬세 왕의 총비!
참상이라도 겪은 듯 끔찍한 침묵이 회장을 쓸고 지나갔다.
“데바라네를?”
모든 귀족들의 시선이 유스카리에게 꽂혔다. 갑자기 말문이 터지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신음 같은 반문이 이어졌다.
“지금 데바라네라고 하신 겁니까? 데바람의 총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쥬세가 제 첩을 내주었다는 것입니까. 그것도 스스로의 뿌리가 카르시타 인이라 주장하는!”
“데바람의 첩실에게서 아이라니요.”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전하, 지금 이건!”
쿵쿵 주먹을 쳐대는 이들의 소란 탓에 탁자 위로 흥분과 고함이 떠돌았다.
“……귀한 물건 상하겠소. 적당히 하시오.”
유스카리는 말을 잃은 얼굴로 의뭉 떨었다. 일처일부를 법전에 명시하고 있는 카르시타였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왕비의 친부인 아르노만이 말없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만!”
사태를 진정시킨 건 쇼하인 공이었다. 그는 소란한 귀족들을 단박에 고함으로 가라앉혔다.
“전하.”
쇼하인 공의 노여움 띤 눈동자에 귀족들이 입을 다물고 왕을 쳐다보았다.
“소신이 직접 읽어보아도 좋겠습니까.”
쇼하인 공이 무례를 무릅쓴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왕은 대답 대신 서신을 그에게 성의 없이 건넸다.

[갑작스러운 서신에 놀라실 줄 아옵니다. 하지만 전하의 승은을 입어…….]

“승, 승은을 입어…….”
“거 참, 답답하게!”
쇼하인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전하께서 저를 취하시기 전, 이제는 붕어한 데바라노 ‘주세 노늘랑 펜 이시온 데바라노’와는 근 두 달여 가까이 그의 병세로 인해 합실하지 않았음이 첫 번째 증거이며, 그것은 데바람 왕실의 어의와 ‘주세 노늘랑 펜 데바라노’의 직속 시종이 증거인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는 분명한 당신의 핏줄이라는 것을 감히 미천한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또한 황망하게도 저는 당신에게 후계로 삼을 만한 적합한 왕자가 없다는 것을 풍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했을 때 아르노만이 주먹을 쥐고 탁자를 후려쳤다. 넋 놓고 듣고 있던 몬테인 공이 정신을 차리고 그의 어깨를 붙잡아 진정시켰다.
“노여워 마시오.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첩실의 패악질이니.”
“몬테인 공, 잊으시면 안 되오. 저 서신은 데바라네로부터 온 것이긴 하지만 스스로를 카르시탄의 피가 섞인 이라 주장하는 분으로부터 온 거요.”
“지금 드레크마 공은 저 발칙한 계집을 옹호하는 것이외까? 지금 당장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소이까?”
다시 논쟁에 열이 오를 기미를 보이자 쇼하인 공은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읽었다.

[이제 4월이 되었고, 어느덧 아이를 품은 지 다섯 달여 가까이 되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저는 이 아이가 당신의 기쁨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는 비록 출가외인이라 하나 ‘피르 오들뢰앙 엘 엘카다 카르시탄’ 왕녀의 고손이며 스스로 그것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니, 왕가의 핏줄인 아이가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습니까.]

“엘카다라면 이미 수십여 년 전의…….”
여기저기서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카르시타와 데바람이 사이가 나쁘기는 하지만, 종종 정략혼의 형태로 왕족과 왕족 간의 혼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막 운을 떼려던 쇼하인이 입술을 퍽 찡그렸다.
“뭐요? 어서 읽으시오. 뭐라고 쓰여 있기에.”
“만일…….”
“만일 뭐요!”
“거 참!”
쇼하인 공의 눈동자가 착잡한 눈으로 아르노만을 향해 굴렀다.
‘이런 방자한 계집이 있나.’
유스카리가 명했다.
“읽으시게.”

[이 아이가 아들이라면 나는 이 아이를 명백한 당신의 아들로서 왕족의 계보에 올리고자 하며…….]

점차 작아지는 목소리에 귀족들이 곁눈질로 아르노만 대공의 눈치를 살폈다.

[……이 아이가 아들이 아닌 여아로서 세상에 나왔을 땐 당신의 외교적 도구로 이 아이를 키움도 내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그것에 대한 작은 보상을 바랄…….]

다른 귀족들은 이미 할 말을 잃은 눈치였다.
“쥬세가 죽고 데바람 왕실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더니만 가관이로군. 제 살길을 도모하겠다는 건가.”

[나는 현존하는 당신의 친척의 성을 받아, 당신의 은혜로운 땅에서 가장 척박한 토지를 봉토로 하사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 은혜의 땅에 나 자신이 아닌 어떤 누구의 입김도 닿지 않기를 원합니다.]

“불입권까지 주장하고 있소! 이 건방진 여인이 대체 뉘 안전이라고!”
쇼하인 공은 거의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유스카리는 아르노만의 굳은 표정을 슬쩍 곁눈질한 후 골치 아프다는 듯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것에 대한 온당한 조처만 취해주신다면 나는 아이의 죽은 어미가 되어, 그 아이가 당신과 당신의 정비의 아이로서 온 세상을 누릴 때도 이 한 입 굳게 닫은 채 당신의 은혜의 땅의 거름이 되겠습니다.]

“아이 팔아먹는 어미가 감히! 이이…….”
낭독을 계속하던 쇼하인 공의 목소리가 사그라졌다. 서신을 쥔 채 입술을 꾹 깨물던 그가 착잡한 듯 긴 얕은 한숨을 연거푸 내켰다.

[내가 원하는 땅은 요크의 퀸시…….]

“요크의 퀸시…… 퀸시오 반도겠구려, 이것은. 그리고 그 뒤에…… 뭐라고 쓴 겐지…….”
“아니,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어찌 이것을 믿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저도 동의하는…….”
“그쯤 하시오.”
유스카리는 그들의 소란을 일시에 종식시켰다.
“내 따로 알아보았소. 의심을 거두어도 좋을 만큼 흠잡을 데 없다고만 답하겠소.”
쇼하인 공은 착잡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다른 이들은 구겨진 서신을 한 번씩 살피고 옆 사람에게 넘겼다. 곧 아르노만의 차례가 왔다.
“대공께서도 살펴보시오.”
아르노만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호랑이 같은 입가는 축 처져 있었지만 주먹만큼은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왕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고, 또 참았다.
‘외도는 위법이다.’
분명 법전에 명시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법전의 위에 놓임’을 인정했다. ‘카르시타 밖에서의 일’이라는 명분이 그러한데 어찌 왕을 책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더해 자신의 딸인 왕비가 딸만 둘을 낳은 후 석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다.
원칙과 전례대로라면 애당초 후계를 생산하지 못하는 왕비를 몰아내고 새로운 씨받이를 들여야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자식인데 아비로서 그것이 쉬울 리가.
카르시타 인들은 그만큼 부부관계와 혈연관계에 폐쇄적인 사람들이라, 차선책으로 양자를 입양한들 결국 나중엔 폐위당하고 그와 더불어 왕비의 문제가 거론될 것이 분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에게 양자 입적을 이해시킨다 하더라도 계승 후보들이 성장하고 현왕이 물러날 때가 되면 왕권을 둘러싼 이들의 칼부림이 일어날 가능성도 농후했다. 실제로 이 자리에 있는 다섯 명의 공작들은 모두 다른 잇속을 지닌 자들이었다.
지금만 해도 현왕의 형인, 선왕 제누바시스의 아들 알렉시스를 중심으로 한 선왕파와, 현왕의 누이가 낳은 뉘사나를 중심으로 갈라져 때를 노리고 있는 승냥이들이 이를 갈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게 자신의 딸아이가 아들을 보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들여온 사생아를 왕태자로 앉히라는 말인가? 기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사생아가 아닌 왕자가 된다면, 또 다를 터다.
아르노만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낮게 깐 눈동자를 움직였다. 다 번진 글자, 물기에 젖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얼룩져 있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사실 서신의 내용으로 미루어, 귀족들은 유스카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다음 대의 왕위는 전하의 아들이 잇는 것이 가장 적법할 것입니다.”
“아들이라면……. 뭐 아들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르노만은 그녀의 아이가 아들일 것임을 ‘직감’했다. 적자를 보지 못한 왕비를 딸로 둔 아비의 직감이었다. 제 딸의 가슴이 갈가리 찢어질 것이 눈에 훤해, 그는 통렬한 고통을 삼켰다.
지지부진 이어지는 회의는 몇 시간이고 지속되었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만일 사내아이라면 비와 나 사이의 아이로 입적하는 것에 동의하시오? 쇼하인 공.”
“……그게 진정이라면, 지금 시국에 가장 좋은 처방이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그러니 동의합니다.”
“루덴 공.”
“……의결에 순응하겠습니다.”
“몬테인 공.”
“……동의합니다. 전하의 핏줄을 경우 없는 여인의 손에서 막 자라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드레크마 공.”
“동의합니다.”
“체자스 공.”
“진정 전하의 혈육이라면, 왕실의…… 귀한 손님이십니다.”
“……좋소.”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에게 몰렸다. 유스카리가 딱딱하게 호명했다.
“피노제의 대공께 묻겠소.”
아르노만이 껍껍한 눈꺼풀을 내렸다 들었다.
답은 떨어졌다.
“……의결에 따르겠습니다.”

유스카리는 그 자리에서 서신을 태웠다. 15월 5일 새벽, 집회소에 모인 5인의 대귀족의 의결로서 제르 시나와 엘 네들리타 데바라네, 데바람 왕가의 여인의 망명이 비밀리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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