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근대의 풍상을 대변할 하나의 주제를 잡으라면, 아마도 ‘민족국가의 생애’가 단연 선두그룹에 낄 것이다. 18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 형성되어, 20세기에 전성기를 거친 민족국가는 이제 21세기에 들어와 자본과 시장의 세계화라는 광풍이 불면서 문자 그대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운명이 되었다. 국가정책의 정당성을 자국 시민이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과 자본에게 물어야 하는 상황이 초래하는 사회적 야만을 막기 위해선 일국 차원의 민주주의로는 불충분하고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가, 세계시민주의가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럼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이 책의 주요논지는 계몽주의의 세계시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상은 낭만주의의 중재를 거쳐 공동체적 사유 속으로 결합되어 문화민족으로서의 민족의식 속으로 용해되며, 이 문화민족이라는 바탕에서 출발하여 민족국가를 형성함으로써 독일이 세계사적 국가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며, 이로써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의 매개가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의 관계라는 문제에 대하여 민족주의자들, 진보진영, 보수진영, 자유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 진영에서의 논의와 자신의 시대에 대한 역사학자의 태도 등을 시사하고 있다.